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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보수가 지녀야할 최소한 가치

대선을 코앞에 두고 다급해진 보수 진영이 요동을 치고 있다. 처음에는 서로가 보수의 적통임을 주장하며 상대를 가짜보수라고 부정하더니 이젠 다시 단일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보수의 재건을 얘기하는데 무엇이 진정한 보수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어디까지가 보수이고 어디까지가 범보수인지도 도통 알 수가 없다.

오로지 권력과 영달에 눈 먼 보수들

사실 진보냐 보수냐 하는 잣대만큼 그 기준과 범위에 있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 분류도 없다. 따라서 어느 하나의 기준으로 이를 재단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뿐만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진보나 보수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딴죽을 걸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들은 아무리 백번을 양보해도 보수라 칭하기엔 솔직히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듯 불편한 감이 있다.

보수는 어쨌거나 그것이 무엇이든 당대의 체제와 질서를 온전히 지키는 것을 기조로 한다. 따라서 보수가 눈만 뜨면 입에 달고 사는 것이 법과 원칙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질서인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이것이 지금 보수의 핵심 가치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권에서 보수를 자임했던 세력들은 어떠한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병역 비리, 세금 탈루와 같은 불법행위는 장관직 후보자들의 4대 필수과목으로 정착되었고, 부패한 정경유착의 장막 뒤에서 권력자들의 사익은 교묘히 국익인 듯 포장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보수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인 원칙주의는커녕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감조차 보여주지 않았으며, 소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엔 더 가관이었다.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 정부의 공식조직인 검찰의 수사결과를 모두 부인하는가 하면 심지어 우리나라 최고의 사법기관인 헌재의 결정마저 부정하며 시꺼먼 민낯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어떤 법과 원칙도 없었고, 자유민주주의엔 대한 신념도 없었으며, 오로지 권력과 영달에 눈 먼 탐욕과 이기심만이 가득 차 있었다. 때문에 보수도 보수를 부끄러워했고,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입증하고자 했다.

필자는 지금 진보와 보수의 우열을 가리려는 것이 아니다. 이 한정된 지면 위에서 어느 쪽이 더 옳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다만, 우리의 신체도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간의 길항작용을 통해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듯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진보와 보수의 상호견제와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보수세력이 담지해야 할 최소한의 가치와 태도에 대해 묻고 싶을 뿐이다.

기득권 희생되는 것 감내해야

보수와 수구의 근본적인 차이는 보수의 가치가 자신의 기득권과 충돌할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기득권이 희생되는 것도 감내하는 것이라면 진정한 보수주의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만, 단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합리화하기 위해 보수의 가치를 이용하는 것일 뿐이라면 수구라는 이름조차 아깝다.

이번 대선은 촛불에서 비롯된 탄핵 보궐선거다. 보수의 재건을 얘기하고자 한다면 촛불민심을 향한 일말의 사과는 고사하고 보수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적 고려는 선행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심지어 국정운영에 대한 통합된 비전도 없이 범보수 단일화를 하겠다는 것은 손님 앉혀놓고 돈부터 받겠다고 아무 음식이나 섞어서 내놓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수구의 뿌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보수의 한계라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보수이기 이전에 인간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