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민일보]배짱보다는 염치가 필요하다

프레스센터/칼럼/기고

정치에 대한 불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정치인에 대한 불신의 싹을 틔운다. 이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정치에 대한 혐오를 키우는 양분이 된다.

 

국회에선 어제 저녁 한국당과의 타결이 있기 전까지 내년 한 해 살림을 책임질 470조 규모의 예산안이 본회의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발목이 잡혀 있었다. 이와 함께 국민을 공분케 한 윤창호 군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법안 등 200건 가까운 민생법안들도 잠을 자고 있었으며, 법정시한으로부터 한 달을 넘긴 대법관 임명동의안 역시 보고서 채택조차 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국회의 모든 절차가 올스톱이 되었던 결정적 이유는 야 3당이 예산안과 선거제도 문제를 연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좋고 선거제도 개혁도 좋다. 그런데 왜 그 대가가 예산안인가. 자신들의 당리당략 때문에 나라살림을 담보로 잡겠다는 그 배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예산안은 예산안대로 처리하고 선거제도 개혁문제는 또 별도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면 될 일이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다 같이 앉아서 먹고 있는 밥상 전체를 엎어서야 되겠는가.

 

안타까운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당리당략에 매몰된 정치적 이기주의는 국민이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서 종종 그와 배치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어제 한전공과대학 설립지원위원회의 출범을 두고 민주평화당에서는 연기금대학원과 비교하며 전북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떠들썩하게 기자회견을 했다. 전남의 한전공대는 전폭적인 지원을 하면서 왜 전북의 연기금대학원은 반대하냐는 것이다. 불과 한 달 여 전 새만금개발공사가 설립된 데에 이어 바로 전날 새만금을 국가산단으로 전환하는 법안이 통과돼 전북도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인 새만금사업을 전속력으로 추진해나가고 있지만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다.

 

반복되는 시나리오에 익숙한 풍경이다. KTX 김제혁신역 때도 그랬고, 새만금 재생에너지클러스터 비전선포식 때도 그랬다. 그래도 그것이 정말 전북 도민들을 위한 욕심이라면 조금도 탓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필자부터 거들고 나섰을 테니까. 그러나 상대방이 친절한데도 속이 거북할 때는 그 의도가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팩트체크를 하자면, 한전공대는 지금부터 지자체 및 부처 간의 협의와 조정을 시작해야 하는 단계이니 한라봉이 될 지 탱자가 될 지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인 것이고, 연기금대학원설립법은 연금공단과 전북도, 기재부, 교육부, 복지부가 다 모여 거의 합의안을 도출해 가고 있는 단계까지 와 있다.

 

필자 역시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늘 길이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란을 떨고 불평불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포함하여 정책과 예산사업 전반을 놓고 어떻게 하는 것이 총체적으로 전북과 도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인가를 진중하게 고민하고 다음 또 그 다음 단계로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다.

 

정작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땐 손을 놓고 있다가 일의 끄트머리 쯤 가서 된다 싶으면 냉큼 자기한 한 일이라며 생색을 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리며 기자회견을 하고 성명서를 내는 식의 기회주의적 정치행태는 책임을 면피하려는 그 정치세력 외에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느 유명한 역사강사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으로 본질을 꿰뚫어보는 혜안과 국민을 사랑하는 애민정신’, 그리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를 꼽았다. 그 중에서도 염치는 굳이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양식 있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가 아닌가 한다.

 

아무리 잿밥에 탐이 나더라도 염불까지 걷어차는 것은 중노릇을 하겠다고 나선 자가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여러 가지 위기에 몰린 지역경제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전북 정치권이 힘을 다 합쳐도 모자란 상황이다. 전북과 도민들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겠다던 맹약을 잊지 않았다면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염치는 갖춰주시길 당부 드린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