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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센터/칼럼/기고

[전북매일신문]대법관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면서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을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5공 청문회와 함께 유행했던 말들이다. 2009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치러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 나온 후보자도 이 매뉴얼을 차례로 돌려가며 기계적인 답변을 하고 있었다. 청문회장에서는 여야의 청문위원들이 교차로 질의를 하게 되어 있어 공수가 바뀔 때마다 후보자를 둘러싼 숱한 의혹들이 파도처럼 일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적절한 지점에서 타협의 수위가 정해지지만 그 당시 청문회만큼은 달랐다. 검찰총장 내정자가 인사청문회 끝에 자진 사퇴를 하는 사상 초유의 사퇴가 벌어졌다. 외형은 자진 사퇴였으나 내용은 막다른 골목에서 사퇴가 불가피했던 만큼 사실상 ‘낙마’였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다시 내정된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매형 사건에 외압을 행사했던 사실이 불거져 나왔다. 후보자와 관련된 ‘부고란’까지 샅샅이 뒤진 끝에 얻은 개가였다.

 

우리나라 인사청문회는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던 2000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처음에는 대법원장이나 국무총리 등 헌법상 임명에 있어서 국회의 동의를 요하거나 국회에서 선출하는 고위공직자들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2003년, 2005년에 법이 순차적으로 개정되면서 국가정보원장이나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에서 모든 국무위원으로까지 그 대상이 확대되었다. 우리나라 사상 최초의 인사청문회는 김대중 정부 때 이한동 국무총리를 임명하면서였다. 이 후 장상, 장대환 총리 후보자들이 위장전입 등의 문제 때문에 연이어 낙마하면서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 검증은 인사청문회의 첫 관문이자 마지막 관문이 되었다. 그러자 후보자의 비위사실에 치중해 흠집내기에만 열을 올린다고 하여 일각에선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정책검증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는커녕 고위공직자의 ‘4대 필수과목(위장전입,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병역기피)’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만큼 그 도덕성의 잣대조차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청와대는 300개에 가까운 문항으로 후보자를 완벽하게 검증한다고 자랑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그 300개의 문항은 단 한 가지의 의혹을 거르기에도 성글기 짝이 없었다.

 

다시 대법관 인사청문회이다. 얼마 전 후보자군이 발표되자마자 각계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려와 재고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다양성이 문제다. 그러나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결국 그 중에서 4명의 후보자가 제청되었다. 1년이 다 되어가는 헌법재판관의 궐위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기사도 내지 않던 보수언론들이 대법관 4명의 궐위에 대해서는 하늘이 무너질까 연일 대서특필이다. 그러나 이것이 양으로 중요도를 따질 문제인가. 중요성으로 따지면 1년에 가까운 헌법재판관의 궐위가 기껏해야 한 달도 채 안 될 대법관의 궐위보다 가볍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법관의 ‘빈’자리가 아니라 소수자들을 위해 ‘비워두어야’ 하는 자리이다. 특히 이번에 임명되는 대법관들은 그 동안 소수자 보호를 위해 전향적인 의견으로 입을 모았던 ‘독수리 5형제’가 떠난 자리를 채워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누군가에 의해 대표되지 못한 소수자들의 권익은 항상 밀리거나 소외되기 쉽다. 14명의 대법관이 모두 획일적인 사고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 자체가 편파적인 것이다. 그래서 非서울대 출신이 필요하고 非법조인이 필요하고 남성이 아닌 여성 대법관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대법관의 다양화’는 사회의 마지막 소수자까지 보호해줘야 할 대법원이 갖는 사회적 책무의 또 다른 이름이다.

 

4명의 후보자를 한꺼번에 검증해야 하는 이번 인사청문회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무부장관을 비롯해 검찰총장 후보자 3명을 포함하여 14번의 청문회를 치렀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수월해지기는커녕 더 신중해지고 조심스러워진다. 수천 명의 법관들 속에서 뽑히고 뽑혀서 올라 온 후보자들이니 능력이 부족해서 낙마를 하겠는가. 방점은 다시 아직 검증되지 못한 도덕성의 문제와 대법관으로서의 책무 문제로 수렴될 것이다. 대법관의 궐석이 두려워 호들갑을 떨다가는 보수화된 사법부가 다시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