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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가짜가 아니었다면 진짜를 보여라

보이스피싱이 한창 유행이더니 이젠 PC를 감염시켜 가짜은행 사이트로 유도한다는 파밍, 스마트폰 문자메시지를 이용하는 스미싱 등 수법도 진화된 각양각색의 사기행각들이 판을 치고 있다. 실제 보이스피싱 같은 경우는 수법이 어찌나 절묘한지 판사도 꼼짝없이 당했다는 게 기사화되기도 했었다. 가짜 은행 사이트도 진짜와 구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런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내는 이런 기술에 있어서 이런 사기범들도 울고 갈 고수가 나타났다.

 

'검찰총장이 혼외자식을 숨겼다'. 뜬금없이 검찰총장의 사생활 문제가 떡하니 일간지 머리를 장식했다. 이미 혼외자식이 있고 그것을 숨겼다는 확정적 보도다. 그러나 내용인즉슨 아이도 아이의 엄마도 아닌 제3자가 나서서 이 아이가 당신의 아이라는데 아니라는 걸 밝혀보라는 식이다. 검찰 사상 최초로 총장에 대한 공개적 감찰지시도 떨어졌다.

그러나 그런 소문만으로 총장 아닌 평검사조차도 조직이 나서서 감찰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거니와 감찰을 한다고 해서 어차피 진실을 규명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애초 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막장 시나리오가 노렸던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말초적 더듬이를 곧추세우며 이게 정말일까 아닐까를 수없이 소곤거리는 사이에 그들의 목적은 조용히 완성됐다. 마치 수화기 속에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홀린 듯 따라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내 통장에서 뭉텅이 돈이 빠져나가버린 것처럼.

 

다음 시나리오는 더 치밀하다. 당시 TV토론 속의 대통령은 당당했다. 기초연금을 도입해서 모든 어르신들에게 현재보다 두 배의 연금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공약으로 내걸 정도가 되면 재원조달방법은 당연히 마련된 게 아니겠냐며 묻는 이의 공임도 쳐주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일 년도 안 돼 그것은 지키기 어렵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장기적인 세계불황과 세수 부족이 이유란다. 그것이 마치 어제서야 새롭게 벌어진 일인 듯 얘기했다. 자신을 믿고 신뢰해주신 어르신들께 죄송하다고는 했지만 정작 어르신들께서는 그 사과마저 '국무회의에서 그랬다고 하더라'는 전언을 귀동냥으로 주워들어야했다.

망설임 없는 약속에 신속하고 형식적인 사과라니 어딘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역시나다. 지난 대선 새누리당의 공약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소 25조원은 필요한 기초연금 재원에 약 15조원만 할당되어 있단다. '국민연금과 통합 운영'이라는 문구도 잊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킬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선거 유세 때 지방마다 선심 쓰듯 호언장담했던 사업공약들은 어떤가. 전북에서도 그렇게 약속했던 숙원사업이 모두 7개였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하나라도 빠질세라 살뜰히도 챙겼다. 그러나 취임한 지 석 달 만에 SOC예산 삭감방침을 발표하고 신규사업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7개중 4개는 아예 밥상에 숟가락도 치워버렸다. 열 자식 안 굶기는 어머니 마음으로 민생을 챙기겠다던 그 살가운 표정이 눈에 선하다.

지방재정 문제는 한술 더 뜬다. 전월세 대책을 내놓으라고 했더니 매매세를 살리겠다며 취득세를 인하하겠다고 해 지방정부가 일제히 반발하자 지방소비세 전환율을 6% 인상해주겠다며 서둘러 잠재웠다. 그러더니 지난 정부가 약속해놓고 올리지 않은 5%에 살짝 1%만 얹는 것도 모자라 그것마저도 2년에 걸쳐 반반씩 쪼개 올려주겠단다. 밥 떠먹여 주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있던 밥을 빼앗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속았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싶지 않다. 속은 것으로만 끝을 내버리면 약속했던 자는 더 이상 숨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민낯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싸움을 그만둘 수가 없다. 이 모든 것들이 가짜가 아니었다면 진짜를 보여라. 민의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국정원을 개혁하고 부자감세는 당장 철회하여 부족한 지방재정과 복지재원을 확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