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반갑습니다/이춘석이야기

책임지는 정치성과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알파고와 AI, 자율주행차, 비트코인이 등장했습니다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것들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도 이제는 낡은 것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사회, 경제, 문화는 물론이고 전반적인 삶의 방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정치가 고민입니다

사회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도 못하고 

국민 인식의 틀을 바꾸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앞장서서 시대정신을 만들던 역할은 사라지고 

낡은 권위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불신의 집단이 되었습니다.

 

예결위 간사를 하며 수천억대 도로예산을 딴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추운 겨울 동네 모정에서 비닐막을 치고 버티는 어르신들을 보며 

무엇이 중요한가를 자문했습니다.

그 어떤 명분이 있더라도 

정치가 실제 국민들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런지요.

 

원내 수석부대표를 하면서는 

현실을 몰각한 근원주의가 독이 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성명서를 남발하면서 정작 진짜 문제해결을 회피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는 일입니다.

 

책임지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여당의원, 삼선의원, 호남의원으로서 책임지는 정치를 하겠습니다.

낡은 질서를 깨고 새 질서를 세우라는 촛불 민심과

이중적 소외를 받은 지역을 변화시키라는 익산 민심을 아울러 받들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책임은 회피하지 않으며 하나씩 삶의 문제들을 풀어나가겠습니다.

다른 정치의 상을 세우겠습니다.

 

책임지는 정치로 성과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그 길에 애정 어린 조언과 따뜻한 질책으로 함께 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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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반갑습니다/프로필



  -  황등초.중, 남성고 졸업
  -  한양대학교 법학과 졸업
  -  원광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졸업(석사, 박사과정 수료)
  -  사법고시 제30회 합격(1988년, 사법연수원 20기)





  -  전 법무법인 한솔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  전 원광대학교 법학과 겸임교수





  -  무변촌 익산에 최초 변호사 사무소 개설
  -  서민과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상담

  -  우리배움터 한글교실 법률자문
  -  군산.익산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이사
  -  익산시 배구협회 회장 

  -  국회법 및 국회상임위원회 위원정수에 관한 규칙개정 특별위원회 위원
  -  대법관(양창수) 임명동의에 관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
  -  대법관(신영철) 임명동의에 관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 등 다수

  -  민주당 언론장악저지대책위원회 위원
  -  대통령 처형의 한나라당 공천비리진상조사위원회 위원
  -  공안탄압저지대책위원회 위원
  -  쌀직불금 부정수령 진상조사위원회 위원
  -  종부세 위헌 소원과 관련한 기획재정부 장관 발언 진상조사소위 위원
  -  이명박정권 정치보복 진상규명특별위원회 위원
  -  의료민영화 저지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보건의료 제도개선특위 위원
  -  시국선언 교사탄압 대책위원회 위원
  -  무효언론악법폐지투쟁위원회 위원
  -  한상률 게이트 진상조사단 위원(간사)
  
  -  민주통합당 BBK진상조사위원장 정봉주 구명위원회 위원
  -  한나라당 부정선거 디도스테러 진상조사위원회 부위원장
  -  한미FTA 무효화 투쟁위원회 위원

  -  민주당 원내부대표
  -  민주당 원내대표 비서실장
  -  민주당 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
  -  민주당 대변인

  -  국회 법조인력양성 제도개선 소위원회 위원
  -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간사)
  -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  민주통합당 정책위 제1정책조정위원장
  -  민주통합당 전라북도당위원장 

  -  새정치민주연합 전략홍보본부장

  -  국회 운영위원회 간사 

  -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

  -  어버이연합 불법자금 진상규명 TF 위원장

  -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간사)

  -  국회 남북관계개선특별위원회 위원장

  -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탄핵추진 실무준비단장

  -  국회 탄핵소추위원단

  -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원내비서실장

  -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

  -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

  -  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간사역임)

  -  현 제20대 국회 교통안전포럼 대표

 
  -  저서 '야권연대' : 초선대변인의 형님들과의 맞짱토론
  -  저서 '인사청문회와 그들만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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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이춘석이야기



저는 정치를 야당의원으로 시작했습니다.
국회의원 임기 첫 새벽을, 저는 국회의사당 앞 차디찬 돌계단 위에서 맞았습니다
회의장이 아닌 서울광장에서, 서류뭉치 대신 촛불을 들고
정부 고위관료가 아닌 시민들과 하는 정치가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연속 3년 예산 날치기라는 전대미문의 기록 속에서 당연한 우리몫을 지키고 
찾아오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 했고, 새롭게 유치하는 것보다
지방의 기관을 통폐합하는 시도에 맞서 싸우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습니다.
세금을 혈세라고 말합니다. 4년 전, 573억에 불과했던 국비 예산을 
1,272억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이 예산은 말 그대로 혈세입니다
사업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통령의 형님도, 힘 있는 여당의원도 아닙니다
야당 초선의원에게 책상머리에 앉아 편안하게 이룰 수 있는 사업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초선의원이 당 대변인, 국회 법사위 간사 등의 중책을 담당하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입니다. 최근에는 한명숙 대표체제 출범 후 공식적으로 단행된 
당직 인선에서 법사위는 물론, 행안위의 정책까지 총괄하고 조정하는 
1정책조정위원장에도 내정되었습니다.

저는 편안한 잠자리와 따뜻한 밥을 주지 못하는 정치는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4년간 거짓정치와 싸워왔습니다. 이제 더 많은 복지를 통해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변화를 주는 진짜정치를 구현하겠습니다.

앞으로 4년에 익산이 앞으로 갈 것인가, 이대로 멈출 것인가가 달려 있습니다
야당일 때 잘했다면 여당일 때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 주십시오
남의 힘에 기대는 사람보다 미래를 믿고 맡길 인물을 선택해 주십시오.
익산도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검증된 일꾼 이춘석이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익산의 자존심을 지키는 정치인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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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춘석이 되기까지

반갑습니다/이춘석이야기


저 이춘석은 전북 익산시 황등면에 소재한 조그마한 농촌마을에서 5남매 중 막내로 1963년에 태어났습니다.

평범하게 초중학교를 마치고 남성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공부도 곧잘 하는 학생이었지만 형과 누나가 모두 남성고와 남성여고를 수석으로 나와 서울대에 진학했던 터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인 1981년, 학생운동을 하던 형이 대학을 포기한 후 군대에 가고 누나가 학교를 자퇴한 후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했다는 사실로 부모님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예민한 사춘기를 넘기던 저에게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부모님은 서울로 보내면 자식을 망친다는 생각으로 서울로 진학하려는 저를 만류하셨고 결국 저는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하겠다는 조건으로 4년 장학금과 기숙사, 생활보조금 지급을 약속한 한양대학교 법학과를 선택하였습니다.

평균서적 B+이하면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조건은 부모님께는 심리적 안전장치였지만 저에게는 질풍노도의 사회 속에서 끊임없는 자괴감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집안은 물론, 지역사회의 기대를 받고 있었던 형과 누나를 변화시킨 동력이 무엇인지를 알고 함께 하고 싶다는 욕구와 부모님께 더 이상의 좌절을 드릴 수 없다는 책임감은 대학시절 내내 저를 무겁게 했습니다.



왜 사법고시를 보아야 하는지, 사법고시를 합격하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당위성을 스스로 부여하지 못한 채 저는 졸업한 이듬해 제30회 사법고시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뒤, 저는 사회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법학회에서 열정적으로 동료들과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저의 고민은 조금씩 가닥을 잡을 수 있었고 결국 서민과 소외계층도 법률 서비스를 공정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게 제가 가진 지식을 공유하고 나누어 줄 수 있다는 신념으로 판검사가 아닌 변호사를 선택하여, 고향인 익산의 관할법원인 군산지원 앞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그렇게 5년여를 보낸 후 당시 법원, 검찰청이 없어 변호사가 없던 고향 익산에 최초로 변호사 사무실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료법률상담을 시작해 어느 덧 7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법률지식을 서민들과 나누고 조언해주는 정도의 소박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조차 서툰 조선족 아주머니가 두 아이를 데리고 이혼소장을 들고 사무실을 찾았을 때, 어느새 그 분을 위해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간단하게 이혼소송을 도와줄 수도 있었지만 남편을 만나 여러 번 설득을 하여 결국 재결합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안정을 찾은 아주머니가 고맙다며 내민 사과 한 봉지가 어쩌면 그렇게 귀하게 여겨지던지……. 그 아주머니를 통해 변화한 제 자신이 스스로도 대견했습니다.

친정 부모님에 빚보증을 섰다가 이혼을 당하고 그나마 남은 9평 아파트 보증금마저 캐피탈회사에 빼앗기게 된 아주머니가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마음으로 변호사님을 찾았다”는 말을 하셨을 때는 허술한 우리 사회의 안전망에 부끄러움이 느껴졌습니다.
고민 끝에 많은 사람들의 탄원서를 모으기로 하고 수차례에 걸친 방대한 서류와 입증 덕분에 마침내 승소판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이 우유 값도 없어 인사도 못한다는 아주머니는 끝까지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자식 뒷바라지 끝에 빚만 남았으면서도 그 사실이 자식들에게 알려져 혹여 마음에 짐이 될까, 개인파산 신청을 하시면서도 끝까지 마음고생을 하시던 노인, 추락사고로 경수 손상을 입어 월 32만원의 수급으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장애인, 골수암에 걸린 동생과 장애인인 아버지, 극심한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다 자신도 트랙터에 끼어 다리를 절단하게 된 가장…….

제가 만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너무도 작았습니다. 소송이나 개인파산을 무료로 도와드리고 약간의 후원, 혹은 후원자를 찾아 연결하는 일, 그리고 안타까움에 혀를 차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7년……. 저는 비로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더 늦기 전에 서민과 소외계층을 위해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제도화하는 일, 스러져가는 익산의 경제를 보듬어 지역을 부흥시키는 일, 익산만이 아니라 전국가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보상을 받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받은 따뜻한 신뢰, 그리고 절박하게 바꾸어야 할 현실을 잊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안타까움에 혀만 차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여러분의 대표로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함께 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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