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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센터/칼럼/기고

[전라일보]사법부, 추적자의 반전을 기대한다

  “빵! 빵! 빵!”

근엄하고 정숙했던 법정에 연이어 총성이 울려 퍼졌다. 여고생을 살해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던 그 순간 피해자의 아버지는 법과 원칙이 실종된 법정에서 오로지 진실을 묻기 위해 스스로 검사가 되어 피고인에게 총구를 겨눠야 했다. 이것은 얼마 전 자체 내 최고의 시청률로 막을 내린 드라마 ‘추적자’의 첫 장면이다. 돈과 권력이 시키는 대로 조작된 증거와 강요된 증언으로 점철된 재판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됐던 히틀러의 기요틴과 다르지 않았다. 그 위에선 힘 있는 자의 명령과 힘없는 자의 복종만 있을 뿐 진위에 대한 입증이나 판단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드라마는 픽션이지만 이름 없는 사람들의 수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권력과 자본의 탐욕적 폭력을 정확하게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논픽션이다.

 

대법관 인사청문회가 얼마 전에 끝이 났다. 3주 전부터 청문회 특위의 민주당 위원들은 연일 아침저녁으로 릴레이 회의를 이어가며 후보자에 대한 정밀하고 철저한 검증에 힘을 쏟았다. 신상에 관한 도덕적, 법적 결함에서부터 법관 출신의 후보자는 판결문 하나하나, 검찰 출신의 후보자는 기소나 수사상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검증범위를 제약했던 것은 오로지 물리적인 시간상의 한계뿐이었다.

청문회 첫 날, 후보자는 태안기름유출사고 당시 삼성중공업의 법적 손해배상책임을 56억 원으로 제한해 준 판사였다. 접수된 피해액만 3조 5천억 원이 넘는 국내 사상 최대의 해양오염사고에 대해서 재판부는 타워팰리스 한 채 값도 안 되는 금액으로 면죄부를 준 것이었다.

둘째 날 후보자는 검찰 측의 추천인사로서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함께 고속승진의 가도를 달린 TK출신 중 한 사람이었다. 이 후보자는 위장전입에 부동산투기도 모자라 연고가 있는 지역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었다. 검찰은 부인하고 있지만 지금도 진행 중인 공판에서 그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수시로 오르내리고 있다.

셋째 날 청문회에서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한 달 치 최저임금보다도 더 많은 금액을 하루의 이행강제금으로 물린 후보자를 보며 벼랑 끝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법의 현실이 개탄스럽다는 그의 증언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마지막 날의 후보자는 경영승계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총수에게 배임죄를 인정하고도 형량을 늘리지 않고 집행유예를 선고한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잘못을 인정한 사람은 없었다. 때로는 몰랐거나 때로는 의도하지 않았거나 때로는 법에 쓰여 있는 대로 한 것일 뿐 법과 양심에 어긋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즈음되면 청문회는 스토리의 전개가 빤히 보이는 한 편의 픽션이 된다.

 

이것이 지금의 대법원과 이를 구성하는 혹은 구성할 대법관들의 현실이다. 4일 연속 청문회를 치러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의 피로가 아니라 사법부에 대한 절망감과 무기력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임명동의안 처리가 지연되자 보수 언론들은 열흘이 넘는 대법관 공석사태에 대해 야당을 향한 책임추궁을 지나 이젠 역사적 단죄라도 할 기세이다.

유서대필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 강기훈 씨의 재심사건이 3년이 다 되도록 방치되어 있는 것이 대법관이 부족한 탓인가. 이들이 대법관이 되어 하나의 소부를 구성한다면 어떻게 될까. 위장전입,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 편법 증여 정도는 눈감아줘야 하는 것은 물론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가는 하루에 100만원씩 철퇴를 맞을 것이고, 재벌들은 아무리 불법을 저질러도 피해액을 보상하겠다는 말만으로 죄를 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사법부의 모습인가.

 

드라마가 천착했던 현실은 다음 대사에 압축되어 있다. ‘총리직을 위해 재판을 조작한 대법관, 빚을 갚기 위해 친구의 딸을 살해한 의사, 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오기 싫어 소녀를 친 가수, 이들 모두가 사람’이라고, ‘사람이란 게 다 그런 것’이라고.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워진다’고. 그렇다. 이것이 이 뒤틀린 현실의 근원이자 작동기제가 된다. 재선이 되고 보니 더 많은 정보와 더 많은 힘이 집중되고 이에 뒤따르는 유혹과 회유가 수도 없이 양심의 벽을 타고 넘나든다. 휘몰아치는 풍랑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흔들릴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사람이 아닌가. 지금이 사법부가, 검찰이, 정치가 이 ‘현실’에 대한 반전의 시나리오를 보여줄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