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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매일신문]선거일은 ‘법정공휴일’이 아니다

보통선거. 선거의 4대 원칙 중 하나다. ‘보통’이라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보통’이라는 말이 전면에 등장하기까지 ‘보통스럽지’ 못했던 전사가 행간에서 읽힌다.

그렇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1인 1표를 행사한다는 보통선거가 실시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귀족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정치참여가 자본가와 중산층에게, 다시 노동자와 소시민에게 그리고 여성에 이르는 ‘보통사람’ 모두에게까지 확대된 것은 불과 100년 안쪽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정치적 지위 역시 그 만큼 향상되었을까? 여성의 정치참여율은 아직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이 어떤 것인지는 3년째 거리에서 23번째의 희생자를 떠나보낸 쌍용차 사태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정치참여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고 하지만 이들이 정치영역에 등장하게 되는 것은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말기 환자가 된 다음이다. 따라서 보통사람들의 실질적인 참정권 확대를 위한 역사적 시도들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투표시간 연장에 관한 논란이 무성하다. 모 대선주자는 “공휴일인데 비용을 들여서 시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는지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한다.

선거일이 정말 법적으로 공휴일일까?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노동자가 출근을 했을까?

선거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근거는 단 하나뿐이다.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관공서와 공무원은 선거일에 쉴 수 있다. 즉, 관공서의 휴일이고 공무원의 휴일이다.

이 외에 선거일이 공휴일이라는 근거는 법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마치 선거일이 온 국민의 공휴일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법정 공휴일이라고 불리는 빨간 날은 근로기준법상 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공휴일은 언제일까? 법적으로 주1회의 휴일과 5월 1일 근로자의 날만 공휴일로 지정돼 있다. 따라서 선거일의 휴무여부는 회사에서 정하기 나름이고 결과적으로 지난 총선 당시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블루칼라 노동자는 62%가 선거일에 근무했다. 선관위가 의뢰한 연구용역 결과에서도 유급 휴무 또는 휴업으로 인정받는 노동자는 22.7%에 불과했다. 이러한 까닭에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중 열에 일곱은 투표시간의 연장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참정권 확대라는 당위에서 보더라도 갑론을박이 있을 수 없는 일이건만, 국민적 혼란을 야기한다느니 선거관리 비용이 증가한다느니 하는 논거들은 너무나 옹색해서 민망할 지경이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비용부담이 참정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결정한 바 있다. 헌재는 지난 2007년 해외거주자에 대한 투표권을 인정하면서 “국가적 부담증가를 우려하여 선거권 행사를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는 더 이상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200-300억이 들어가는데다 해외 각지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안전성을 확보하는 일이 국내 투표에서 2시간 연장하는 일보다 간단할 리 없었다. 해외거주자 투표는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였다. 그래서였을까? 한나라당은 재외 국민의 투표권을 위해 참 열심이었다.

 

그러나 국내 투표시간은 40년째 그대로다. 당시 그토록 적극적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말로만 보통선거라는 것이 밝혀진 마당이다. 부유한 동네의 투표율은 높고 비정규직 등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는 투표율은 낮다.

이미 선관위는 선거가 있는 해마다 많게는 170억원이라는 엄청난 홍보비를 쓰고 있다. 투표하기 싫어서라면 홍보비를 쓰는 것이 맞지만 시간이 없어서 투표를 못하는 것이라면 그 비용을 투표시간 연장에 쓰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이제 가난한 사람들의 의사가 배제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