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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인사로 미리 본 박근혜 시대

박근혜 정부의 인선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를 지켜보는 심정은 스릴 그 자체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오디션의 최종우승자 발표가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까 싶을 정도이다. 박근혜 정부의 인선 작업은 철저한 비공개 속에 이루어져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깜짝쇼를 하듯 공개됐다. 더욱이 그렇게 공개된 인사들 대부분은 인선이 진행되는 동안 물망에 몰랐던 무수한 사람들을 제치고 홀연히 등장한 제3의 인물들이었다. 세평은 고사하고 객관적인 검증절차조차 건너 뛴 예측불허의 깜짝쇼에 국민들은 당황했다. 심지어 즉흥적으로 내정과 철회를 반복하는 통에 그들 사이에서마저도 적지 않은 혼선이 빚어졌다. 어떤 이는 내정 통보를 받고 출근을 했는데 갑자기 내정이 철회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인수위에서의 상하관계가 뒤바뀌어 어제까지 부하직원으로 부렸던 사람을 내일은 상사로 모셔야하는 웃지 못 할 관계로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아슬아슬하고 극적인 퍼즐 맞추기가 아니라 다 맞춰진 퍼즐을 통해 나타난 그림, 그것이다.

 

김용준 전 내정자가 무수한 의혹 끝에 사실상 낙마를 한 후 초대총리로 임명된 사람은 검찰 출신이었다. 그는 박근혜 비대위원장 시절 새누리당의 공천위원장이기도 했다. 선대위를 꾸릴 때부터 안대희 전 대법관이나 권영세 전 의원을 중용하는 등 박근혜 대통령의 검찰 출신 사랑은 남달랐다. 이와 함께 또 새로운 전성시대를 맞이한 그룹이 육사 출신들이다. 1차 인선에서 국가안보실장과 경호실장 자리를 모두 육사 출신으로 내정하자 5공시대의 '육법당'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심지어는 국가안보실장에 이어 국정원장까지 육사 출신으로 기용한 것을 두고 국가 안보에서 주와 종이라 할 수 있는 국제관계와 군사정책의 주객이 전도된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러한 특정 그룹에 대한 편애는 정책적인 불균형을 넘어서서 공직의 공공성 자체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재벌기업을 감독해야 할 공정거래위원장 자리에 대형 로펌에서 오랫동안 재직하며 대기업 측의 논리를 두둔해 온 인사를 내정한 것이다. 이는 한 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울러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겠다면서 성장예찬론자를 경제수장으로 내세우는가 하면 무기중개 브로커를 국방부장관에 내정한 것 역시 말하기조차 민망한 넌센스다. 이젠 공직이 전리품이었던 것도 모자라 그저 어여삐 여기는 자들에게 하사하는 하사품 정도로 전락한 것인가.

 

얼마 전 열린 첫 번째 국무회의를 지켜본 언론들은 '받아쓰기 내각'이라는 촌평을 날렸다. 말 그대로 각 분야의 책임자들이 모여 국정을 논의해야 할 자리에서 그야말로 장관이라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받아 적기에만 급급한 모양새를 비꼰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누가 쓴 소리는커녕 발언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대선 기간 동안 박근혜 후보에게 간언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박 후보의 신임을 더욱 드높였던 인재들이 왜 새 정부 인사에서는 자취를 감추었는지 새삼 물을 이유가 없겠다. 대신 그 자리들은 법조인 중에서도 특히 검찰 출신과 군 출신, 관료 출신들과 같이 상명하복에 철저히 길들여진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들은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지시하는 손톱 밑의 가시를 찾아 뽑는 데에만 여념이 없을 것이다. 과연 이들 중 누가 거대통신사들의 보조금이나 낮추는 일보다 서민들의 생계까지 위협하고 있는 재벌구조 자체의 개혁이 더 시급하다는 것을, 담뱃값 인상이나 주가조작을 잡는 것으로는 복지재원 마련의 근본적인 대안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조언하리라 기대할 수 있겠는가.

 

18대 대선 당시 혹자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이명박 정부가 그리워질 것이라는 농반진반의 한탄을 했다. 이명박 정부가 민주정부 10년의 역사를 거꾸로 돌렸다면 박근혜 정부의 시계는 도대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인사를 두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박정희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떠올렸다. 인사 스타일을 보면 국정 운영 스타일도 짐작할 수 있다. 상명하복의 수족들로만 빼곡히 채운 이번 인선을 보니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숨조차 쉬기 어려웠던 독단과 권위주의 시대가 다시 도래할 것 같은 불안함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