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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의정단상>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헌재 탄핵심판의 증인신문이 일주일에 두 번씩 촘촘히 이어지고 있다. 증인들의 잠적, 불출석 등으로 헌재의 신문일정은 차질을 빚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짓을 덮으려는 또 다른 거짓이 스스로가 놓은 덫에 자기 목을 내놓으며 진실의 실체를 드러내주고 있다.

 

지난 3차 변론기일에 대통령측 대리인단이 제출한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에 관한 답변서가 그 결정판이다. 대리인단은 재판부의 제출요구가 있은 지 20일이 다 되어서야 이 답변서를 제출했지만, 이것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입증이나 법리적인 방어라기보다는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한 억지나 변명에 불과했다.

 

변명의 요지는 참사 당일 대통령은 열심히 일을 했는데, 다만 대응이 늦었던 것은 잘못된 보고와 언론의 오보로 인한 혼선으로 상황의 심각성을 늦게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된 시점은, 승객 대부분이 구조되었다는 기존의 보고를 정정하며 인명피해가 심각하다는 김 전 안보실장의 유선보고가 있었던 250분경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리인단이 당시 행적을 정리해 제출한 표를 보면, 1120분에 이미 선체가 전복된 사진과 함께 476명 중 161명이 구조된 상황이라는 국가안보실의 서면보고가 올라간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이후에도 250분전까지 유사한 내용의 서면보고가 몇 차례 더 올라갔다. 370명이 구조됐다는 잘못된 보고가 올라간 것은 1시 이후였다. 백번 양보해 오보 때문에 혼란이 있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1시 이전까지는 300명이 넘는 승객들의 구조가능성 자체가 불분명한 위급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심각한지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는가. 과연 대통령이 서면보고서들을 검토하긴 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대리인단의 답변서는 그 안에서도 거짓과 거짓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필자가 지난 국감에서 감사원 문서검증을 통해 열람한 국가안보실의 답변서를 보면, 김 전 실장은 1123분에 이미 대통령에게 대부분의 승객이 전복된 배 안에 갇혀있다는 내용의 유선보고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국가안보실이 참사 당일 업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였다.

 

그렇다면 두 가지의 추론이 가능하다. 만일 대리인단의 답변서가 사실이어서 대통령이 250분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면 1123분의 김 전 실장의 유선보고내용은 거짓이 되고, 국가안보실의 답변서가 사실이라면 대통령은 이미 오전에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더 끔찍한 쪽은 후자다. 청와대 측은 여전히 1123분 국가안보실장의 유선보고 내용을 함구하고 있다. 물고 물리는 이 거짓의 퍼즐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당일 대통령이 보고 받은 모든 통화기록을 공개하는 것이다.

 

대리인단은 사실입증보다는 오로지 탄핵심판을 지연시키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어차피 이길 순 없으니 시간이라도 끌어보자는 꼼수일 것이다. 그러나 링컨의 명언대로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고, 몇몇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다. 결국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려가고 세월호는 올라와야한다. 탄핵결정을 하루빨리 마무리하기 위해 오늘도 국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소추위원으로서 헌재 재판정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