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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센터/칼럼/기고

[전북중앙신문]예산에도 트렌드가 있다

‘도시어부’라는 TV 프로가 인기다.

전문적인 지식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낚시를 좋아하는 연예인 서넛이 수다를 떨며 낚시를 할 뿐인데 재미있다.

시청률도 높다.

역동적인 예능의 포맷에 낚시라는 소재가 어울리기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리얼 예능’이라는 최근 트렌드를 잘 캐치한 덕분이다.

트렌드란 변화를 전제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다.

방송뿐 아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자 속한 업계의 트렌드를 기민하게 읽어내야 한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그 나라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발전 수준이나 속도 또는 정권의 가치지향에 따라 국가예산의 트렌드도 달라졌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단기적 경제성장을 목표로 대기업 위주의 중화학 공업과 대규모 토목 건설, 수출 산업 등에 예산이 집중됐다.

김대중 정부 당시에는 새로운 국가 성장 동력으로서 IT산업 육성 기반을 마련하는 데 상당한 예산 투입이 이루어졌다.

이후 참여정부 들어 성장보다 분배의 정의 실현과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사회안전망과 복지 분야에 대한 예산이 대폭 강화됐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다시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구사하며 대규모 토목 건설 사업을 비롯한 전통적 SOC 사업에 예산 폭탄을 퍼부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재정효율화라는 기조 아래 분배보다는 성장위주의 보수적 경제정책과 예산편성에 집중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의 예산 기조는 적극적 재정확장을 통한 국민 삶의 질 개선이다.

기재부는 내년 예산편성 시 ▲중소기업 지원과 지역 고용위기 해소 등을 통한 청년 일자리 확충 ▲저출산 고령화 대응 ▲핵심 선도사업에 대한 집중 투자를 통한 혁신성장 ▲안전예산 강화를 통한 안심사회 구현 등에 예산을 중점적으로 투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특히 도로, 철도, 항만 등 토목 중심 SOC 예산은 소폭 늘리되, 국민 삶의 질 개선과 밀접한 생활형 SOC 구축 예산은 대폭 증액한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플랫폼 경제와 8대 선도사업에 5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R&D 예산도 사상 최초로 20조원 이상 편성해 혁신성장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국가예산의 트렌드가 바뀜에 따라, 각 지자체에서도 예산 입안자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해 맞춤형 국비확보 대응 전략을 세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실제 국비 확보에 오랜 노하우를 쌓아 온 영남지역 지자체들은 정부의 변화된 예산 기조를 민감하게 캐치하고, 맞춤형 신규 사업들을 발굴하는 등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전북의 자치단체들은 어떤가.

올해 국비 확보 전략이라고 해서 들여다보면, 여전히 전통적 SOC 개념의 토목 건설 사업 위주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 해에도 보고 지지난해에도 보고 그 지난 해에도 봤던 비슷한 사업들이 철 지난 레코드처럼 반복된다.

사과나무 밑에 가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전통적 산업기반이 부족한 전북 지역에 4차 산업혁명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국토균형발전의 당위성과 지역적 특성을 내세워 얼마든지 예산당국을 설득할 수 있다.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연구개발 및 유관 산업육성 사업을 기획해 중앙정부에 제안하고, 정부가 여기에 예산을 지원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의 새로운 접근 전략도 고민해볼 만하다.

470조 규모의 슈퍼예산이 풀렸다.

예산의 트렌드를 읽고 월척을 낚을 것인가, 텅 빈 어장에서 세월만 낚을 것인가.

선택은 우리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