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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매일신문]대탕평의 장을 열어라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광주전남 선대위 발대식에서 ‘인사 대탕평’을 선언했다. 눈물 어린 호소였다. “박근혜 정부는 모든 지역에 해당하는 100% 대한민국 정부가 될 것”이라며 거듭 거듭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정부의 내각은 특정지역 향우회를 방불케 한다. 권력의 방점이 어디냐에 따라 좌우만 바뀔 뿐이다.

 

얼마 전 2기 내각 구성이 있었다. 대통령을 제외한 국가의 5부 요인인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이 모두 PK출신이었다. 국가 의전서열 10위 내 인사 12명 중 8명이 역시 PK출신이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청와대에 입성한 후 검찰총장, 감사원장에서부터 총리 후보에 이르기까지 후보자들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김기춘 비서실장과의 범상치 않은 인연이 화제 거리가 되었다. 그러자 최근에는 다시 새롭게 교체된 경제부총리가 실세로 부상하기 시작하자 최 장관이 졸업한 고교, 대학들의 이름을 딴 인맥라인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정부 부처 내에선 최 장관과 인연이 깊은 인물들이 공공연하게 기관장 후보로 거론되면서 더불어 TK출신들도 발빠르게 승승장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는 동안 TK-PK가 아닌 지역들은 점점 더 소외됐고, 전북은 그나마 남아 있던 이경옥 차관까지 사퇴하면서 급기야 ‘무장관 무차관 시대’라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맞아야 했다. 특정지역 출신에 편향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인사권자는 지역을 보지 않고 자질만 보고 뽑았다는 해명을 당당하게 내 놓았다. 실제 10명이나 낙마를 했는데 자질만 보았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또 지역을 보지 않고 능력만 본 결과라고 한다면 더욱 모욕적이다. 우리나라 인재가 TK-PK뿐이란 말인가.

 

조선시대 당시 탕평책은 왕권강화를 위한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사회통합의 목적이 크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100%의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는 공언은 사회통합에 대한 의지가 담긴 메시지였다. 탕평은 소극적인 공정성을 준수하는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인 지역안배 정책으로 나타났어야 했다. 어떻게 지역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해명이 당당할 수 있는가? 도민들과 한 약속을 백번 양보해 정치적 수사였다고 하더라도 통치권자로서 사회통합을 외면하는 일이 덕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자질이라도 훌륭했어야 해명의 절반이라도 납득할 수 있을 테지만 이 또한 유감스럽긴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한 지 17개월 만에 10명의 후보자가 낙마하게 되는 사상 초유의 인사참사를 초래했다. 역대 정부 중 최단 기간 동안 최악의 인사실패를 기록한 것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 내가 아는 사람만 골라 쓰려니 인사 풀이 협소한 것은 당연지사고 학교 선후배이자 고향 지인들이다 보니 검증의 날이 무뎌진 것 또한 알만한 것이었다.

 

정부는 다시 차관 인사를 앞두고 있다. TK든 PK든 그것은 반쪽짜리 대한민국이다. 전북의 ‘무장관 무차관 시대’의 이면에는 특정 권력자의 인사독식과 이를 방기하거나 혹은 여기에 편승하고 있는 인사권자의 무책임이 숨겨져 있다. 자신이 안심할 수 있는 사람만으로 인사 성벽을 쌓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불신이다. 연고라는 끈이 있지 않으면 다른 마음을 품을지 모른다는 타인에 대한 불신, 연고가 아니고서는 그 다른 마음들을 자신의 지도력으로 끌고 갈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에 대한 불신, 마치 조폭문화처럼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 자라나는 독버섯이다. 아직 박근혜 대통령 임기의 반환점도 돌기 전이지만 레임덕 얘기가 들려오는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대로 옹색한 처사를 반복하는 것은 레임덕을 강화시킬 뿐이다. 두려움을 떨치고 대통합과 대탕평의 장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집권자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임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