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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센터/칼럼/기고

[전북일보]기득권을 버린다는 것은

 '뼛속까지 바꾸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요즘 민주당 의원들이 귀가 닳도록 하는 말들이다. 필자 역시 다르지 않다. 어떻게 하면 더 진정성을 담아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 바꿔가며 갖가지 수사를 달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말을 할 때마다 끊임없이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찜찜한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과연 이 말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지수는 몇 퍼센트나 될까하는 의구심이 그것이었다.

 

며칠 전 국회에서는 민주당의 18대 대선을 평가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민주당만 모르고 있었던 냉엄함 정치 현실과 선거전략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평가가 분주하게 오갔다. 그 중 한 패널의 발언이 인상 깊다. 2006년 열린우리당 비대위원과 4.11총선 전 당 쇄신 자문위원, 그리고 총선 직후 당 평가 발제를 맡았었다는 그는 비대위 보고서나 작년 발제문을 토시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가져와도 될 정도로 민주당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일갈했다. 민주당의 집단적 기억력은 2주라고도 했다. 민망하고 부끄러우면서도 설마했다.

최근 예결위가 '호텔방 쪽지예산'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지 단 하루 만에 여야 예결위원들이 외유성 해외출장을 떠나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의원들은 처음엔 관행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언론의 비난이 빗발치자 의원들은 결국 일정을 취소하고 중도 귀국했다. 그러고 보니 민주당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고개를 숙인 지 채 2주도 되기 전이었다.

 

필자를 포함한 민주당 의원들은 2주가 아니라 단 한 순간이라도 기득권을 내려놓은 적이 있었던가?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득권. ‘개인이나 국가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이미 얻은 권리’라는 것이 사전적 풀이다. 패자에게 ‘이미 얻은 권리’라는 게 있을 리 없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허용되는 모든 특권들을 의미하는 것일 터다.

그러므로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특권이나 관행의 이름으로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부러 하지 않는 것이며, 안 해도 됐던 것들을 하는 일일 것이다. 즉, 기득권은 마음만 낮춘다고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해야 포기되는 것이라는 얘기다. 늘 그랬다는 이유로 해외연수를 가고 밀실회의를 하며 의원연금 폐지를 은근슬쩍 미루는 모습에서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다짐은 듣는 사람의 귀만 수고스러운 공염불이 된다. 국민의 눈높이는 스스로 국민이 되어야 비로소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는 대출이자 갚느라 허덕이고 그런 직장조차 얻지 못해 알바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어느 날 아침 해고통지 문자라도 날아오면 결국 철탑에 오를 수밖에 없는 삶. 평범하지만 너무나 절실한 그런 삶에 직면해보지 않고서는 왜 국민들이 국회의원의 특권에 그렇게 날을 세우는지 ‘국회의원’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최근 민주당을 보면 패배한 정당 같지가 않다’는 것이 정치평론가들이나 민주당을 출입하는 기자들의 중론이다. 민주당은 어제서야 비대위원장을 선출했다. 한발 후퇴한 관리형 비대위가 어느 정도의 결기를 가질 수 있을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두 번의 패배에 대한 자기분석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민주당이 어디로 가야할 지에 대한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또 한 번의 패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여기서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모든 권리를 잊자. 그리고 이제는 당 밖을 나가 천 사백 칠십만이 우리에게 지워 준 소임, 지금 당장 국민의 목전에 놓인 문제들에 대한 답을 내놓으라는 소임 하나만을 가지고 한 사람의 국민으로 돌아가자. 가서 함께 겪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가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