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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정치가 사는 길은…

김한길 대표가 연이어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모두에 나온 것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다. 국외 출장의 사전 사후 보고를 철저히 하고 귀빈실 사용을 금지하며 경조사비도 5만 원 이하로 규제한다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나온 것은 부정부패의 원인을 제공한 정당의 다음 공천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그런데 1차 혁신안이 발표되자 당내 의견이 분분하다.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는 절차 문제에서부터 본질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자학적 제 살 깎기다, 현실성이 없다 등등의 비판과 국민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라는 대안까지 메뉴도 다양하다. 하나같이 옳으신 말씀이다.

 

기초공천제를 폐지하자는 당론을 정할 때도 치열한 토론이 있었다. 기초공천을 폐지하면 지방의 토호들이 득세하고 검증되지 않은 후보들이 지방정부와 의회를 장악할 것이며 여성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가 지방정치에 진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주장들이 사례만 달리하며 끝이 날 줄 몰랐다. 당연히 일리 있는 얘기다. 지금 새누리당이 폐지 약속을 번복하고 뒤로 슬쩍 물러나며 하는 얘기들도 논리들은 그럴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기초공천제를 폐지해야 하고 왜 이러한 혁신안을 수용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먼 데 있지 않다. 필자는 정기국회가 끝나자마자 한 달 여 동안 읍면동을 돌며 의정보고회를 가졌다. 그리고 연이어 설 연휴 동안에도 지역 곳곳의 시설들을 방문하며 모처럼 주민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수도 없이 만난 주민들이 손을 꼭 부여잡고 하는 얘기들은 하나같이 시작은 달라도 결론은 같았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고 열두 번째 명절맞이 인사를 다니지만 제 작년보다는 작년이 더,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 어렵다는 얘기들만 들릴 뿐 그래도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지역민심을 듣고 온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이 모든 문제들의 시작이자 끝이다. 답은 언제나 현장 속에 있다.

우리들은 이렇게 힘든 데 너희들만 편하게 사는 게 말이 되냐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 국회의원들의 특권 문제이고, 우리들은 코앞에서 숨이 꼴딱 넘어갈 지경인데도 너희들은 해결책을 제시하기는커녕 싸움만 하고 있냐며 질타하고 있는 것이 정치혁신의 문제다. 민주당이 정신 못 차린다고 동네북이 된 이유도, 창당도 되지 않은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이 치솟았던 이유도 결국 그 저변에는 간절한 생존의 문제가 있다.

이렇게 당장 목이 말라 물 한 모금이 급한 사람 앞에서 그 물을 어디에 담느냐 얼마나 담느냐 어떻게 담느냐를 두고 시비를 논한다는 것은 얼마나 한가로운 일인가. 지금의 정치권에 대한 총체적 불신과 무능한 정치에 대한 국민적 원망은 바로 이러한 간극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마땅히 이에 대한 책임은 기존의 정치권에 있다. 기초공천 폐지든 특권 내려놓기든 그것의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국민의 명령이라면 따라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원죄에 대한 대가인 것이다.

 

한편 안철수 측의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아울러 새 정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것도 언제까지나 새롭다는 것만으로 지지를 받을 수는 없고 기존 정치세력을 구태로 몰아붙이며 반사이익을 얻는 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제는 안철수 신당도 새 정치를 하겠다는 구호만 외치지 말고 어떻게 새 정치를 할 것이며 우리 지역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결국 어떤 정치세력도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화려한 수사로 ‘새 정치’나 ‘정치혁신’을 포장한다 하더라도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두 가지의 과제를 모두 안고 있는 민주당의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따라서 그 개혁안이 개혁에 기여하지 않는 방안이라 할지라도, 모두 내려놓고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먼저다. 그런 다음 정치 본연의 임무를 다시 한 번 각성하자. 국민이 사는 길이 정치가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