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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희망을 위해 먼저 책임을 배워야 한다

세초 해맞이 행사들이 분주하다. 언제나 폐허가 된 전장에서도 다시 삶의 터를 일구고 절망의 나락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사람들이 계사년 새해를 환하게 밝혀 놓았다. 삶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항상 밝은 나날들로만 이어질리 만무한 일이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때로는 희망이 되어주고 때로는 희망을 빚지기도 하면서 오늘을 살아낸다. 일출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산비탈을 오르는 마음들이 모여 어제를 만들었듯이 내일도 만들어 갈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후, 취임도 하기 전에 5명의 노동자들과 인권활동가가 삶을 포기했다. 그들의 삶은 이미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물리적인 폭력과 법적인 폭력 앞에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살아있는 수많은 전태일들의 고통은 외면하면서 전태일의 동상 앞에 꽃을 바치고, 비정규직을 줄이겠다고 하면서 불법 비정규직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민생법안으로 내세우는 박 당선자에게서 노동자들은 더 이상 남은 삶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박 후보의 당선사실만으로 마지막 걸었던 희망마저 빼앗긴 사람들이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친구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당당하게 반값 등록금을 내며 학교를 다니고 싶었던 학생들, 일터에서 쫓겨날 걱정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나 프로그램으로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의 소명을 다하고 싶었던 언론인들, 그리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박한 꿈을 꾸며 살아가지만 옳은 일은 옳다고 말하며 살고 싶었던 소시민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정권이 아니면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외쳤던 사람들의 희망이 민주당의 패배와 함께 침몰했다. 총선에서의 패배 이후, 전열을 제대로 재정비하기도 전에 출정한 민주당은 이들에게 희망만을 빚진 채 또 다시 패장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와신상담. 춘추전국시대에 월나라와 오나라 간 싸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고사로서 싸움에서 패한 자가 섶에 누워 잠을 자고 쓰디 쓴 곰쓸개를 핥으며 재기의 의지를 다졌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지금 민주당은 어떠한가. 패배는 했으나 패한 자는 없고 패배한 군사들은 있으나 패배한 장수는 없는 것이 지금 민주당의 형국이다. 오히려 수장이 없는 어수선한 공백기를 틈타 호랑이 없는 굴을 먼저 차지하려는 짧디 짧은 계산들만 어지럽다. 총선에서의 패배를 뼈아프게 반성해내지 못한 것이 이번 대선 패인의 절반이었다는 지적은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이다. 박근혜 당선자의 인수위가 재야 보수파 인사들로 속속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의 비대위는 아직도 안개 속이다. 이전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 여전히 경기장에 뛰고 있는데 새로운 경기를 시작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그것이 이미 패배한 게임이라면 그 판에 뒤늦게 뛰어들어 굴욕과 수치를 억울하게 감당하려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정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다음 경기는 이전 경기의 패배에 대한 냉정한 평가 위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그 패배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밝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모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전북도민들은 민주당에게 86%의 지지를 보내주었다. 전북이, 호남이 우리들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민주당을 찍었겠는가. 그 심정은 민주당에게 지지를 보내 준 48%의 국민들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다. 이제 민주당이 화답할 차례다. 이 떠들썩한 새해 모두에 조차 절망의 그늘을 걷어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민주당이 희망으로 빚을 갚아야 한다. 이번 패배를 통해서도 민주당이 환골탈태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민주당에게 희망은 없다. 두 번 다시 민주당의 이름으로 표를 구걸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서로 화살을 겨누는 자중지란을 초래하기 전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무리 속에 숨지 말고 스스로 한 발 앞으로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다음 주자가 새로운 경기장에서 패배가 가르쳐 준 새로운 룰로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것, 그것이 필자를 포함한 책임자들의 소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