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레스센터/칼럼/기고

[전북일보]‘그림의 떡’ 신문고와 항소법원

신문고는 당시 사법제도로도 해결할 수 없는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선정의 상징이자 민의상달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지방민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신문고를 한번 치기 위해서는 몇 날 며칠을 걷고 또 걸어야 북이 있는 곳까지 당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신문고는 서울에 사는 관리나 몇몇 양반만이 이용할 수 있었을 뿐 지방민이나 서민들은 자연스럽게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 문제는 그 형태와 정도만 다를 뿐 6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행정은 물론 교육, 문화, 복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지방은 늘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필자가 익산에서 변호사사무실을 개업했던 1999년, 변호사 1만 명 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익산은 그 때까지도 무변촌으로 남아있었다. 그나마 전주에 법원이 있었지만 항소를 하려면 광주에 있는 고등법원까지 가야했다. 전주에서 광주까지의 거리는 도청소재지 기준으로도 104km이다. 실제 법원까지 가려면 최소한 두세 시간은 걸리는데 이마저도 재판을 대기하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재판 당일만 하루는 꼬박 반납을 해야 한다. 혹여 재판 일정이 아침에 잡히기라도 하면 그 전날 미리 가서 숙박을 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재판이 하루 만에 끝나는 일인가. 게다가 증인이나 참고인이라도 출석을 해야 하면 이를 부탁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변호사 선임 역시 1심을 맡았던 변호인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겠지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득이하게 고등법원 근처의 변호사를 새로이 선임해야 하는 상황도 생기게 된다.

서민들에게는 이런 것 하나하나가 부담이 되고 급기야는 항소를 포기하게 만드는 직간접적인 압력이 되기도 한다. 설령 무사히 재판을 끝낸다 하더라도 어쨌든 지방에 사는 당사자는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을 감내해야 한다. 단지 지방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것은 명백히 부당한 차별이다. 때문에 10년 전부터 전북에서는 고등법원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필자가 국회에 처음 등원했던 2008년에도 전주의 원외재판부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었다. 전북도민의 오랜 투쟁 끝에 얻어낸 광주고법 전주부를 법원행정처가 일방적으로 전주 원외재판부로 강등시켜버렸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등원 후 첫 국정감사가 시작되자마자 그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항소법원 설치에 대해 사법부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정치적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압박했다. 동시에 그 과도기적 방안으로 당시 사건이 적체돼있던 전주 원외재판부의 증설을 요구했다. 대법원은 수긍했지만 예상대로 진척은 없었다. 다음 해에 연두업무보고가 끝나자마자 다시 재촉했다. 법원행정처장은 시기를 못 박아 항소법원 설치를 약속했지만 그러는 사이 처장이 교체되고 두 번째 국감이 돌아왔다. 더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항소법원 설치법을 발의했다. 여당과의 공동주최로 항소법원 설치를 촉구하는 토론회도 개최했다. 결국 그 이듬해 법원행정처는 전주 원외재판부를 증설했다.

우선 급한 불은 끌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19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18대 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된 항소법원 설치법을 다시 제출했다. 대법원이 발주한 내부 용역에서도 항소심 구조개편을 위한 여러 방안 중 항소법원 설치가 가장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사법부가 비로소 항소법원 설치를 한 가지 방안으로 검토하도록 만들기까지는 말 그대로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인내가 필요했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동등하게 보장해 주는 것은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엄연한 의무다. 이것이 열 번을 다시 시작하더라도 항소법원 설치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