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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도덕성과 정책능력은 하나다

엊그제 본청을 가다가 얼핏 보니 본청 앞 마당에 대통령 취임식 준비를 위한 무대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취임식이 벌써 2주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새 정부를 이끌어 갈 정부 각료들의 윤곽은 아직도 안갯속이다. 내각을 꾸려야 할 시점에 여당은 인사청문제도를 바꿔야겠다며 TF팀을 꾸린다고 분주하다. 발단은 박근혜 당선인의 말 한 마디에서였다.

“좋은 인재들이 청문회가 두려워 공직을 맡지 않을까 걱정된다.”

첫 번째로 지명한 총리 후보자가 여러 가지 의혹 끝에 결국 자진사퇴에 이르자 터져 나온 푸념이다. 졸지에 청문회는 갑자기 선량한 공직후보자들을 물어뜯는 몹쓸 투견장으로 전락했다. 이제 도덕성 문제는 비공개, 검증은 능력 위주로 하잔다. 말은 그럴듯한데 까만 속내가 훤히 보인다.

 

필자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총 스물 한 번의 청문회를 치렀다. 그 과정에서 검찰총장 후보자와 대법관 후보자가 최초로 낙마하게 되는 사상 초유의 일들도 연이어 벌어졌다. 그 두 후보자를 포함하여 MB정부 하에서 무수한 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했던 이유는 모두 국민이 요구하는 도덕성의 잣대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령 청문회를 가까스로 통과했던 사람들도 도덕성에 있어서 절반을 접고 봐야 하는 국민들의 넓은 아량이 필요했다.

2011년에는 이명박 정부 들어 청문대상이 되었던 후보자들의 82%가 부동산투기, 병역기피, 세금탈루 등의 문제에 연루되었다는 조사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청와대의 인사검증절차를 거친 사람들이었다. 밀실의 검증은 한량없이 너그러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가장 최근 청문회를 치른 이동흡 후보자 역시 4대과목도 모자라 서른 몇 가지의 의혹리스트로 랭킹 1위를 차지했다. 초대 총리 후보자는 아예 청문회에 서보기도 전에 실격처리가 됐다. 이쯤 되면 후보자를 추천하고 지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혹시 능력 우선의 검증을 하다 보니 도덕성은 뒷전이었기 때문일까? 고위공직자의 ‘능력’이란 무엇인가? 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증식해 온 사람들이 올바른 부동산 정책을 세울 수 있겠는가? 병역이나 납세의 의무를 편법으로 면탈한 사람들이 어떤 권위로 법을 집행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사익과 영달을 위해 불법과 편법을 일삼았던 사람들이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펴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재판을 할 수 있겠는가?

필자가 청문회를 치렀던 많은 후보자들 역시 그러한 우려들을 안고 공직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국민을 위한 정책, 국민의 편에 서는 판결들에 대한 기대는 역시나 하는 절망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도덕성과 분리된 그 ‘능력’이라는 것은 결국 일류대를 나와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최고의 엘리트코스를 달려온 우수한 ‘스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것이 필자가 스물 한 번의 청문회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인사청문제도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미국의 모델이 거론되고 있다. 정책위주의 검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동의하기 전에 묻고 싶다. 지명하기 전에 청문회에 내 놓아도 문제될 것이 없을 만큼 신상에 관한 사전검증이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의회와의 사전협의는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가? 청문위원들의 조사권한은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는가?

지금 고위공직자 인사문제의 본질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정부의 인사검증시스템과 하향평준화된 고위공직자들의 도덕적 기준, 근묵자흑의 인사 풀,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대한 국민들의 총체적인 불신이다. 이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않고 후보자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능력 위주의 검증을 주장하는 것은 양의 탈을 쓰고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도덕성이 무너진 정권으로 인한 참담한 피해는 MB정부 한 번으로 족하다. 청문회가 두려운 사람들은 공직에 나설 마음을 애초부터 접으실 것을 당부한다. 도덕성은 고위공직자의 가장 중요한 정책적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