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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 양의 탈을 쓴 수도권 규제완화

 

 

이솝우화를 보면 양의 탈을 쓴 늑대 이야기가 나온다. 배고픈 늑대가 양을 쉽게 잡아먹기 위해 양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양의 무리로 숨어 들어가는 꾀를 낸 것이다. 늑대가 이런 꾀를 내게 된 건 당연히 그냥 잡으러 갔다가는 양이 도망갈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의 탈을 쓴다고 해서 늑대가 양이 되는 건 아니다.  

 지난 달 말 황교안 총리는 1차 규제개혁점검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명목은 ‘공장 신·증설 및 산업단지 활성화를 위한 개선대책’이었지만, 각종 인허가 등 규제요건을 완화하여 기업의 재산권을 보호해 주고 환경 규제 및 문화재 규제를 완화해서 기업 활동의 걸림돌을 제거해 주는 내용이다. 발표내용 어디에도 수도권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지만 이 규제개혁안이 그대로 실행된다면 기업은 굳이 지방에 내려와 공장을 짓거나 회사를 세울 필요가 없다. 자연보전권역 내 공장 신·증설을 대폭 허용하는 이번 방안은 박근혜 정부가 작년 말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수도권 규제완화를 위한 4가지 선행과제 중 하나다. 이 4개의 선행과제는 진작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주요 경제단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민원사항이었다. 세계 경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는 게 이유다. 정부 역시 지방의 반발을 의식했는지 수도권 규제완화라고 발표하지 않고 ‘투자활성화대책’이라는 틀 안에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 양의 탈을 씌워 놓아도 늑대는 늑대다. 예상대로 지방은 일제히 반발했다. 지방은 더더욱 공동화될 것이고 지방경제는 회생 불가능한 고사 위기로까지 내몰리게 될 것이다. 전발연이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정부가 이 같은 수도권 규제완화를 계속 추진한다면 전북은 향후 10년간 2조원에 달하는 지역 내 생산액이 감소될 것이며 약 7천 6백명의 고용감소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박근혜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가 더 나쁜 늑대인 이유는 과거 잘못된 정책에 대한 어떤 반성적 고려도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지적한 그의 저서 「불평등의 대가」에서 ‘규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우리의 시스템이 보다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공정 경쟁을 보장하고 힘의 남용을 막고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규칙“이라고.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불편한 걸림돌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현 정부의 인식과는 정반대다. 동시에 ’규제완화‘에 대해서도 균형을 잃은 정부가 불안정을 초래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IMF마저도 불평등을 축소하는 것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중요한 관건임을 인정했다고도 밝혔다. 실제 IMF는 최근 1980년대부터 2012년까지 전 세계의 자료를 분석해, 소득 상위 20%의 소득이 늘어나면 오히려 경제성장률이 떨어졌지만 하위 20%의 소득이 늘어나면 경제성장률이 증가했다는 주장을 내 놓았다. 한 때 규제완화의 전도사를 자임했던 IMF도 이제는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수도권 규제완화를 실시하고 있는 선진국들 대부분은 지역발전을 위한 도시재생이나 중심시가지활성화대책 등 지방 중소도시에 대한 발전전략도 동시에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양의 탈을 쓴 늑대는 결국 양고기를 먹기 위해 양을 잡으러 온 양치기에게 선택되었다. 쉬운 길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수도권 집중을 통한 불균형 성장은 결국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지난 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밝힌 국정 구상대로 모든 경제주체들이 하나된 마음으로 창조와 상생의 희망을 만들어가길 원한다면 정부는 양의 탈로 국민들을 속이는 일을 그만두고 지속성장이 가능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는 수도권 규제완화안을 내놓기 전에 지방경제 발전을 위한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방안을 먼저 제시하라. 지역발전위원회로 강등된 국가균형발전위원회도 복원해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수도권 집중정책은 지방은 물론 수도권도 함께 침몰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