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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센터/신문기사

[전북일보] 대통령은 침묵 깨고 진상규명 지시하라

 

침묵은 그 자체로는 무색 무취 무미하다. 그러나 일정한 문맥과 상황 속에 놓이게 되면 침묵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모두들 박수치고 찬성하는 분위기에서 별다른 반대의견 없이 침묵하고 있었다면 이는 긍정의 의미일 것이다. 또 매번 반대의견을 피력하던 누군가가 어떤 안건에 대해선 특별한 이견제시를 하지 않았다면 이 또한 찬성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따라서 평소에 그 사람이 어떤 태도를 보여 왔는지 그를 둘러싼 상황이 어떠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침묵은 특별하게 해석된다.

 

내국인 사찰 여부, 입 다문 의미는

 

지금 정치권은 난데없이 터진 국정원 해킹사건으로 한여름 아스팔트바닥보다도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핵심은 내국인에 대한 사찰여부이고 그렇게 수집된 정보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사안의 중심에 서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대통령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과연 이러한 대통령의 침묵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지난 국회법 논쟁으로 정치권이 한바탕 뒤집어졌을 때 대통령은 국회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토를 달았다. 심지어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것을 가지고도 월권이니 위헌이니 대변인 논평을 줄줄이 이어 달며 훈수를 두셨다. 그랬던 대통령께서 국정원 해킹사건은 터진 지 한 달이 다 돼 가는데도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 청와대 대변인 역시 백브리핑 자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며 굳게 입을 닫았다.

 

한편 사건의 당사자인 국정원은 현재까지 어떤 구체적 자료도 내놓지 않은 채 셀프 조사를 통해 내국인 사찰은 없었다고 스스로 결론 내렸다. 늘 하던 대로 이 모든 의혹을 덮어씌울 그럴듯한 희생양을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자살 동기와 과정, 유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고 국정원은 변명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수시로 말을 바꾸고 있다. 여당은 국정원이 감청하는 게 불법이냐는 옹알이 수준의 주장을 반복하더니 이젠 더 이상 레퍼토리가 없는 지 무대응 전략으로 나가겠다고 선언해버린 상태다. 엄정한 수사를 촉구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이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종편은 한 술 더 떠서 야당이 요구한 로그파일이 공개되는 날엔 국가안보가 송두리째 뿌리 뽑히기라도 할 것처럼 야단법석을 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보호되어야 할 남북정상 대화록이나 북한 무기거래 정보 취득경위 등을 스스로 공개하며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고 있는 이들의 공통된 목적은 오로지 하나다. 국정원 해킹 사건에 대해 함구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 사안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침묵이 어떻게 비춰질 지는 다음 사례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참여정부 당시 안기부 X파일사건이 터졌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기관의 불법행위에 대한 진상규명과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김승규 국정원장 역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며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 때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나 국정원이 무슨 말을 한들 국민이 믿겠느냐국정원이 도청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X파일 사건 때처럼 목소리 높여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나 박근혜 당 대표의 반응, 어떤 것을 보더라도 지금 대통령의 침묵은 온당치 않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보기관이 국민을 사찰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엄중한 사안이다. 이를 묵인할 생각이 아니라면 대통령은 그만 침묵을 깨고 진상규명을 위한 철저한 수사와 국정원의 협조를 지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