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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센터/칼럼/기고

[전북중앙]진실이 뒷전인 시대

 

절기상 봄은 입춘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실제로 봄기운을 체감할 수 있는 것은 경칩 무렵부터다.


바람에 온기가 섞여들 즈음이면 오랜 겨울잠에 빠졌던 개구리가 언 땅을 뚫고 여기저기서 뛰어나와 시끄럽게 울어대며 봄이 왔음을 알린다.

선거도 비슷하다.

본격적인 선거철이 다가오면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온갖 네거티브와 마타도어, 아니면 말고 식 카드라가 튀어나와 정치와 민심을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각 당의 명운이 달린 올해 지방선거 역시 다르지 않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시작됐다.

선거란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제로섬 게임인 만큼 상대적으로 열세에 처한 입장에서 네거티브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란 쉽지 않다.

내 장점을 부각하는 것보다 상대를 깎아내리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는 쪽이 훨씬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특히 각종 SNS와 스마트폰을 통해 초 단위로 정보가 확산되는 지금과 같은 미디어 환경에서,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가짜뉴스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폭발력을 가지고 선거의 판도 자체를 완전히 바꿔버리기도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을 일컬어 진실은 뒷전인, 이른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라고도 부른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의 감정과 신념에 대한 호소가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미국 대선 등 국제적으로 중대한 선거가 이뤄졌던 지난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2016)의 단어로 선정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당시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탈진실’이라는 단어의 사용량은 1년 전인 2015년에 비해 무려 2,000%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온갖 가짜뉴스가 횡행하며 영국과 미국이라는 두 강대국의 선거 판세를 뒤흔들었던 2016년의 상황을 가장 명징하게 정의하는 단어가 ‘탈진실’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선거라는 특수 상황에서 가짜뉴스는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그렇기에 가짜뉴스가 국민의 눈을 가리지 않도록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가 더욱 철저하게 사실 확인과 검증에 나서야 한다.

정보의 파급력이 커진 만큼, 의혹을 제기하는 쪽에 입증의 책임은 더 커졌다.

특히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상대방에 의혹을 제기할 때, 법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팩트체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책임 있는 공직후보자와 공당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당장 안 좋은 이미지를 덧씌워 경쟁자를 손쉽게 끌어내릴 수 있는 패를 두고 그 기본을 지키기가 그렇게 어려운 모양이다.

경칩의 개구리처럼, 확인되지 않은 허위사실들이 이미 여의도와 지역 정가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거창한 비밀이 아니라 하다못해 전화 한통이면 바로 진위여부를 알 수 있는 간단한 사안에조차 아니면 말고식 폭로가 이뤄지는 것은, 선거 국면에서 워낙 그 효과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사람들 사이에 가짜뉴스가 퍼지고 나면, 추후 사실을 교정한다고 해도 이미 오보를 접한 이들의 뇌리에 박힌 부정적인 이미지는 되돌리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른 의혹 제기에 대해 경종을 울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6월 지선이 끝날 때까지 이보다 더한 진흙탕 싸움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더욱이 이번 선거에는 개헌을 비롯해 남북관계를 둘러싼 문제와 전직 대통령의 비리에 대한 수사, 그리고 미투 사태까지 첨예한 문제들이 한꺼번에 엮여 있어 자칫 역대 최악의 혼탁한 선거로 흐를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이번 선거에 임하는 모두가 더욱 자중하고 삼가야 한다.

이는 상대뿐만이 아니라 우리 당 내부에 스스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일성이기도 하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한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선거판에서의 네거티브는 다이어트 중 마주친 치킨만큼이나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반드시 그 부메랑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꼼수에 눈이 가려질 만큼 호락호락한 민심이 아니다.

6월 13일, 경건한 마음으로 국민의 심판을 기다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