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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군사법개혁,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84일 법사위 전체회의장. 28사단 윤 일병 사망사건에 대한 국방부 현안보고 자리였다. 첫 질의에 나선 우윤근 위원이 사진을 들어보였다. 언론에 유출된 윤 일병의 사체 사진이었다. 상체 전부가 온통 피멍으로 뒤덮여 검붉게 변한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참혹했다. 그 상태만 보더라도 가히 그 폭행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필자 역시 군대에 아들을 보내놓은 입장이라 사진만 보고 있어도 명치끝이 저미듯 쓰라렸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사건을 지켜 본 국민들은 이제 군의 폭력을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군은 달랐다.

 

                            법사위원 : “47일날 목숨을 잃었는데 장관은 (취임하면서) 그간 과정을 보고받으셨습니까?”

     국방부장관 : “보고받은 바가 없고……

     법사위원 : “없어요?”

     국방부장관 : “제가 인지한 것은 731일입니다.”

 

군인권센터가 제보를 받아 이 사건의 내막을 언론에 폭로한 시점이었다. 국방부는 4월 초 사건 직후 윤 일병이 단순히 음식물을 먹다가 기도 폐쇄로 인해 사망한 것처럼 브리핑을 했었다. 윤 일병의 시신상태를 한번이라도 보았다면 진실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김관진 전 장관은 이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았지만 연대장 이하 몇몇 간부에 대한 징계조치를 내린 것이 전부였다. 그 때까지 이 사건은 수사부터 기소, 재판까지 28사단 내에서 조용히 처리될 참이었다. 지금까지 밝혀지지 못한 많은 군 사건들이 그렇게 처리됐을 것이었다.

 

지금의 우리나라 군을 보면 5,60년 전의 과거를 보는 듯하다. 휴전협정이 맺어진 지 60년이 흘렀지만 군은 여전히 우리가 전시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군사법제도에 손을 대려고 할 때마다 군 기강을 와해한다거나 지휘권을 약화시킨다며 결사반대하고 나서는 배경에는 이러한 인식이 강하게 깔려 있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군 간부들의 비위사건들을 보면 군이 과연 지금을 전시상태라고 인식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군사법제도를 개선하다고 해서 군의 기강이 무너지거나 지휘권이 침해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군 개혁이 필요한 지점이다. 이것이 군내 사건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그럴 듯한 대책들이 쏟아지지만 군내 폭력범죄가 조금도 줄지 않고 있는 이유다. 암 수술을 해야 할 환자가 스스로 소독약만 바르고 있으니 효과가 있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군의 그러한 폐쇄주의의 핵심에 폐쇄적인 군사법제도가 있다.

현재 군의 법무조직체계를 보면, 예하 부대의 경우 그 부대의 지휘관이 군검찰부와 보통군사법원의 행정사무를 동시에 지휘 감독하도록 되어 있다. 각 군 본부의 경우에는 참모총장이 그러한 역할을 맡고 있고 국방부의 경우엔 국방부장관이 그러하다. 게다가 사건을 수사하는 헌병대 역시 동일한 지휘관에 소속되어 있다. , 사건의 수사단계에서부터 재판확정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모든 처리단계를 장악하고 있는 지휘관으로서는 마음만 먹으면 사건을 은폐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기소와 심판의 분리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실제 재판과정에서 지휘관은 군사법원의 관할관으로서 일반장교 중 한 명을 심판관으로 지정할 수 있는데 심판관은 재판장의 자격으로 해당 재판을 주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군판사에 의해 형이 선고된 이후에도 관할관은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확인감경권). 이 또한 사법과 행정을 분리해야 한다는 3권분립의 원칙에 위배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헌병대와 군검찰 간의 관계다. 헌병대는 사건의 초동수사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전문성이나 독립성이 매우 중요하지만 사단급 이상에 설치되어 있는 검찰부와는 달리 단위 부대장 밑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군검찰보다 지휘관의 입김에 노출되기가 훨씬 더 쉽다. 게다가 헌병조직이 군검찰조직보다 계급이 높기 때문에 군검찰이 헌병에게 수사와 관련하여 명령이나 지휘를 하기란 어려운 구조다.

근대사법제도의 기본원칙들마저 무시하고 있는 현행 군사법제도는 수사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에 여러 가지 한계를 갖고 있다.

 

군사법개혁의 두 가지 키워드는 '개방''균형'이다. 현재의 군사법제도는 형사사법절차로서의 기본원칙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군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것이 필자가 얼마 전 군사재판을 일반법원에서 맡도록 하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발의하게 된 배경이다.

군사재판이라고 해서 반드시 일반장교가 심판관으로 재판에 참여해야만 군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할관의 확인감경권 역시 이미 그 명분을 상실했다. 작년 한해 동안 육군 군사법원에서 확인감경권 행사 현황을 보면 25건 중 군형법범에 대한 것은 단 한 건 뿐이었다. 나머지는 대부분이 교통범죄이거나 폭력범죄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제 작년에도 마찬가지였다. , 더 이상 군사재판을 지금과 같은 형태로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군사법원을 사법부 내 특수법원 형태로 편제를 바꾼다면 현재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들의 상당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

해외 사례를 봐도 많은 나라들은 군사법원이 아예 없거나 군사법원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우와 같이 지휘관이 군검찰과 군판사를 휘하에 두고 전권을 휘두르는 나라는 없다. 미국의 경우도 지휘관이 확인조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재판에 관여한 것이 밝혀지면 중한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 혹자는 군사법원 폐지에 관하여 헌법개정사항이라고도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군사법원을 특별법원으로 '둘 수 있다'고 했을 뿐 이를 강제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헌법까지 개정이 되면 더 바람직하겠지만 지금의 군사법원을 사법부 내 특수법원으로 바꾼다고 해서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초동수사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헌병이 수사에 있어서 군검찰의 지휘를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계급을 중시하는 군의 특성상 군검찰조직과 헌병조직 간의 계급 조정도 수반되어야 한다. 이것이 지금 다시 논의되고 있는 군사법개혁안 중 군검찰을 국방부 소속으로 일원화하는 방안과 결합된다면 수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에 더욱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온 국민을 경악하게 한 윤 일병사건이 발생한 직후 군은 민관군이 참여하는 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는가 하면 특별인권교육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는 등 야단법석을 피웠다. 그러나 뒤에서는 군 수뇌부들끼리 모여 심판관 제도 및 관할관 확인감경권 폐지 불가 등을 결의하고 김관진 전 장관을 위한 면죄부 감사를 하는 등 새까만 속내를 들키고 말았다. 2005년 당시 다 만들어놓은 군사법제도 개편안이 끝끝내 좌절된 이유도 이와 같은 군의 반발 때문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군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이는 군이 스스로 개혁할 수 없다는 것의 반증인 셈이다. 군사법개혁을 고민해 온 많은 사람들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더 많은 장병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군의 기강은 억압과 폭력으로 확립되지 않는다. 국가가 나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고 그 희생을 값지게 여겨 줄 때 병사는 군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군의 사기가 되고 기강이 되는 것임을 군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