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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포토라인, 위험하고 위력적인

  7월 31일 오후 3시.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 눈이 부셨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이렇게 위압적으로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국정감사 때마다 수 없이 드나들었던 대검찰청 정문도 생경하게 느껴졌다. 급작스러운 출두였음에도 오늘 내일을 다투는 초미의 관심사여서 그랬는지 사진기자들은 이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나 이외에 변호인단 자격으로 몇 분이 더 함께 했다. 일행들을 뒤로 하고 박지원 대표가 중앙에 서자 카메라와 기자들은 더 아우성이었다. 이렇게 담긴 영상들은 그대로 그 날 사람들의 저녁 밥상 위에 보기 좋게 올려 질 것이었다. 실제 돈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검 앞 포토라인에 선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는 여론재판은 시작된다.

 

심리학 용어로 ‘부정성 효과’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정보를 더 쉽게 받아들이고 한번 입력된 부정적 정보는 좀처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법원은 무죄공시제도를 두고 있는데 무죄나 면소 판결을 받은 피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재판부가 인정하는 경우 일간신문 등에 그 무죄판결을 공시하는 제도다. 물론 비용은 국가부담이다. 그런데 이를 원치 않는 피고인들이 적지 않다. 본인의 무죄를 공개적으로 밝혀주겠다는 데도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설령 무죄로 결론이 났다 하더라도 어떤 혐의로 재판을 받았는지를 새삼 이를 상기시킴으로써 불필요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거나 부정적 인상을 각인시킬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의심’이 ‘진실’보다 더 위력적이라는 사실을 익히 경험해 본 탓이리라. 명예회복을 위해 일간지에 보일 듯 말 듯 싣는 공시조차 이럴진대 검찰청 앞에서 찍히는 그 ‘한 컷’이 공중파를 타고 갖게 될 파괴력이라는 것은 과연 어느 정도이겠는가. 진실은 오랜 시간에 걸친 수고로움 뒤에 얻어지지만 의심은 즉각적으로 손쉽게 일어난다는 점에서, 여론재판이 시작되는 이 지점은 매우 위험하다.

 

그런데 이 ‘포토라인’의 매커니즘을 가장 잘 알고 활용하는 조직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검찰이다. 우리나라 형법 제126조에서는 공판청구 전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반한 검찰이 기소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피의사실 공표야말로 검찰이 정치에 개입하고 국면전환을 주도하기 위해 가장 유용하게 휘두르고 있는 전가의 보도가 됐다. 두 번의 무죄판결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끈질긴 항소로 2년을 넘게 끌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서도 검찰은 이를 십분 활용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또 어떤가.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까지 대검은 수사과정을 생방송하듯 언론에 브리핑했다. 이를 여과 없이 때로는 단정적으로 대서특필한 언론 역시 검찰과 공범의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 건설업체로부터 ◌억원 수수 의혹’, ‘검찰, 혐의입증 자신’이라는 보도가 매일 반복됨에 따라 여론은 ‘설마?’에서 ‘혹시?’로, ‘그런가?’에서 ‘그렇구나!’로 쉽게 나아간다. 그리고는 다음 날이면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라며 급기야는 보도되지 않은 내용까지 덧붙이며 확대재생산에 나서기도 한다.

 

5년째 법사위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검찰개혁은 피할 수 없는 화두였다. 검찰의 개혁을 요구하는 강도와 검찰이 이들을 대상으로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는 강도 사이에는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존재한다. 힘의 방향만 다를 뿐 크기는 같다는 얘기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 끈을 고쳐 매지 말라 하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자리와 사람을 가리는 일이 어려운 경우가 부지기수다. 진실이 무엇이든 엮기 좋은 재료들은 많으니 그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이 몇이나 되겠는가. 무소불휘의 권력기관을 상대로 싸우는 일은 백척간두에 서서 중심을 잡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선배 정치인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검찰에 맞서는 배포로 맷집을 키워왔다. 박지원 원내대표의 대검찰청 출석도 후배 정치인들에게 살아있는 교훈이 됐다. 박지원 대표가 먼저 자진해서 포토라인에 섬으로써 검찰 측을 당황하게 만든 것이다. 덕분에 카메라는 박지원 대표를 향했지만 의심은 오히려 검찰 쪽을 향하게 됐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했던가. 포토라인 정치가 언제까지 검찰의 전유물로 남게 될 지는 의문이다. 여론재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 할지라도 어딘가에 믿어주는 사람들만 있다면 맞서 싸우는 일이 두렵지만은 않을 터 소란스러운 플래시 세례 속에서도 검찰을 포토라인이 아니라 국민 앞에 세우기 위한 일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