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도덕성과 정책능력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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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본청을 가다가 얼핏 보니 본청 앞 마당에 대통령 취임식 준비를 위한 무대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취임식이 벌써 2주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새 정부를 이끌어 갈 정부 각료들의 윤곽은 아직도 안갯속이다. 내각을 꾸려야 할 시점에 여당은 인사청문제도를 바꿔야겠다며 TF팀을 꾸린다고 분주하다. 발단은 박근혜 당선인의 말 한 마디에서였다.

“좋은 인재들이 청문회가 두려워 공직을 맡지 않을까 걱정된다.”

첫 번째로 지명한 총리 후보자가 여러 가지 의혹 끝에 결국 자진사퇴에 이르자 터져 나온 푸념이다. 졸지에 청문회는 갑자기 선량한 공직후보자들을 물어뜯는 몹쓸 투견장으로 전락했다. 이제 도덕성 문제는 비공개, 검증은 능력 위주로 하잔다. 말은 그럴듯한데 까만 속내가 훤히 보인다.

 

필자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총 스물 한 번의 청문회를 치렀다. 그 과정에서 검찰총장 후보자와 대법관 후보자가 최초로 낙마하게 되는 사상 초유의 일들도 연이어 벌어졌다. 그 두 후보자를 포함하여 MB정부 하에서 무수한 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했던 이유는 모두 국민이 요구하는 도덕성의 잣대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령 청문회를 가까스로 통과했던 사람들도 도덕성에 있어서 절반을 접고 봐야 하는 국민들의 넓은 아량이 필요했다.

2011년에는 이명박 정부 들어 청문대상이 되었던 후보자들의 82%가 부동산투기, 병역기피, 세금탈루 등의 문제에 연루되었다는 조사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청와대의 인사검증절차를 거친 사람들이었다. 밀실의 검증은 한량없이 너그러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가장 최근 청문회를 치른 이동흡 후보자 역시 4대과목도 모자라 서른 몇 가지의 의혹리스트로 랭킹 1위를 차지했다. 초대 총리 후보자는 아예 청문회에 서보기도 전에 실격처리가 됐다. 이쯤 되면 후보자를 추천하고 지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혹시 능력 우선의 검증을 하다 보니 도덕성은 뒷전이었기 때문일까? 고위공직자의 ‘능력’이란 무엇인가? 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증식해 온 사람들이 올바른 부동산 정책을 세울 수 있겠는가? 병역이나 납세의 의무를 편법으로 면탈한 사람들이 어떤 권위로 법을 집행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사익과 영달을 위해 불법과 편법을 일삼았던 사람들이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펴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재판을 할 수 있겠는가?

필자가 청문회를 치렀던 많은 후보자들 역시 그러한 우려들을 안고 공직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국민을 위한 정책, 국민의 편에 서는 판결들에 대한 기대는 역시나 하는 절망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도덕성과 분리된 그 ‘능력’이라는 것은 결국 일류대를 나와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최고의 엘리트코스를 달려온 우수한 ‘스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것이 필자가 스물 한 번의 청문회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인사청문제도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미국의 모델이 거론되고 있다. 정책위주의 검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동의하기 전에 묻고 싶다. 지명하기 전에 청문회에 내 놓아도 문제될 것이 없을 만큼 신상에 관한 사전검증이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의회와의 사전협의는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가? 청문위원들의 조사권한은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는가?

지금 고위공직자 인사문제의 본질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정부의 인사검증시스템과 하향평준화된 고위공직자들의 도덕적 기준, 근묵자흑의 인사 풀,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대한 국민들의 총체적인 불신이다. 이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않고 후보자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능력 위주의 검증을 주장하는 것은 양의 탈을 쓰고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도덕성이 무너진 정권으로 인한 참담한 피해는 MB정부 한 번으로 족하다. 청문회가 두려운 사람들은 공직에 나설 마음을 애초부터 접으실 것을 당부한다. 도덕성은 고위공직자의 가장 중요한 정책적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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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기득권을 버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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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뼛속까지 바꾸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요즘 민주당 의원들이 귀가 닳도록 하는 말들이다. 필자 역시 다르지 않다. 어떻게 하면 더 진정성을 담아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 바꿔가며 갖가지 수사를 달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말을 할 때마다 끊임없이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찜찜한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과연 이 말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지수는 몇 퍼센트나 될까하는 의구심이 그것이었다.

 

며칠 전 국회에서는 민주당의 18대 대선을 평가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민주당만 모르고 있었던 냉엄함 정치 현실과 선거전략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평가가 분주하게 오갔다. 그 중 한 패널의 발언이 인상 깊다. 2006년 열린우리당 비대위원과 4.11총선 전 당 쇄신 자문위원, 그리고 총선 직후 당 평가 발제를 맡았었다는 그는 비대위 보고서나 작년 발제문을 토시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가져와도 될 정도로 민주당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일갈했다. 민주당의 집단적 기억력은 2주라고도 했다. 민망하고 부끄러우면서도 설마했다.

최근 예결위가 '호텔방 쪽지예산'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지 단 하루 만에 여야 예결위원들이 외유성 해외출장을 떠나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의원들은 처음엔 관행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언론의 비난이 빗발치자 의원들은 결국 일정을 취소하고 중도 귀국했다. 그러고 보니 민주당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고개를 숙인 지 채 2주도 되기 전이었다.

 

필자를 포함한 민주당 의원들은 2주가 아니라 단 한 순간이라도 기득권을 내려놓은 적이 있었던가?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득권. ‘개인이나 국가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이미 얻은 권리’라는 것이 사전적 풀이다. 패자에게 ‘이미 얻은 권리’라는 게 있을 리 없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허용되는 모든 특권들을 의미하는 것일 터다.

그러므로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특권이나 관행의 이름으로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부러 하지 않는 것이며, 안 해도 됐던 것들을 하는 일일 것이다. 즉, 기득권은 마음만 낮춘다고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해야 포기되는 것이라는 얘기다. 늘 그랬다는 이유로 해외연수를 가고 밀실회의를 하며 의원연금 폐지를 은근슬쩍 미루는 모습에서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다짐은 듣는 사람의 귀만 수고스러운 공염불이 된다. 국민의 눈높이는 스스로 국민이 되어야 비로소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는 대출이자 갚느라 허덕이고 그런 직장조차 얻지 못해 알바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어느 날 아침 해고통지 문자라도 날아오면 결국 철탑에 오를 수밖에 없는 삶. 평범하지만 너무나 절실한 그런 삶에 직면해보지 않고서는 왜 국민들이 국회의원의 특권에 그렇게 날을 세우는지 ‘국회의원’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최근 민주당을 보면 패배한 정당 같지가 않다’는 것이 정치평론가들이나 민주당을 출입하는 기자들의 중론이다. 민주당은 어제서야 비대위원장을 선출했다. 한발 후퇴한 관리형 비대위가 어느 정도의 결기를 가질 수 있을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두 번의 패배에 대한 자기분석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민주당이 어디로 가야할 지에 대한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또 한 번의 패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여기서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모든 권리를 잊자. 그리고 이제는 당 밖을 나가 천 사백 칠십만이 우리에게 지워 준 소임, 지금 당장 국민의 목전에 놓인 문제들에 대한 답을 내놓으라는 소임 하나만을 가지고 한 사람의 국민으로 돌아가자. 가서 함께 겪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가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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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희망을 위해 먼저 책임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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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초 해맞이 행사들이 분주하다. 언제나 폐허가 된 전장에서도 다시 삶의 터를 일구고 절망의 나락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사람들이 계사년 새해를 환하게 밝혀 놓았다. 삶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항상 밝은 나날들로만 이어질리 만무한 일이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때로는 희망이 되어주고 때로는 희망을 빚지기도 하면서 오늘을 살아낸다. 일출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산비탈을 오르는 마음들이 모여 어제를 만들었듯이 내일도 만들어 갈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후, 취임도 하기 전에 5명의 노동자들과 인권활동가가 삶을 포기했다. 그들의 삶은 이미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물리적인 폭력과 법적인 폭력 앞에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살아있는 수많은 전태일들의 고통은 외면하면서 전태일의 동상 앞에 꽃을 바치고, 비정규직을 줄이겠다고 하면서 불법 비정규직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민생법안으로 내세우는 박 당선자에게서 노동자들은 더 이상 남은 삶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박 후보의 당선사실만으로 마지막 걸었던 희망마저 빼앗긴 사람들이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친구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당당하게 반값 등록금을 내며 학교를 다니고 싶었던 학생들, 일터에서 쫓겨날 걱정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나 프로그램으로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의 소명을 다하고 싶었던 언론인들, 그리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박한 꿈을 꾸며 살아가지만 옳은 일은 옳다고 말하며 살고 싶었던 소시민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정권이 아니면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외쳤던 사람들의 희망이 민주당의 패배와 함께 침몰했다. 총선에서의 패배 이후, 전열을 제대로 재정비하기도 전에 출정한 민주당은 이들에게 희망만을 빚진 채 또 다시 패장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와신상담. 춘추전국시대에 월나라와 오나라 간 싸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고사로서 싸움에서 패한 자가 섶에 누워 잠을 자고 쓰디 쓴 곰쓸개를 핥으며 재기의 의지를 다졌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지금 민주당은 어떠한가. 패배는 했으나 패한 자는 없고 패배한 군사들은 있으나 패배한 장수는 없는 것이 지금 민주당의 형국이다. 오히려 수장이 없는 어수선한 공백기를 틈타 호랑이 없는 굴을 먼저 차지하려는 짧디 짧은 계산들만 어지럽다. 총선에서의 패배를 뼈아프게 반성해내지 못한 것이 이번 대선 패인의 절반이었다는 지적은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이다. 박근혜 당선자의 인수위가 재야 보수파 인사들로 속속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의 비대위는 아직도 안개 속이다. 이전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 여전히 경기장에 뛰고 있는데 새로운 경기를 시작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그것이 이미 패배한 게임이라면 그 판에 뒤늦게 뛰어들어 굴욕과 수치를 억울하게 감당하려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정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다음 경기는 이전 경기의 패배에 대한 냉정한 평가 위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그 패배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밝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모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전북도민들은 민주당에게 86%의 지지를 보내주었다. 전북이, 호남이 우리들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민주당을 찍었겠는가. 그 심정은 민주당에게 지지를 보내 준 48%의 국민들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다. 이제 민주당이 화답할 차례다. 이 떠들썩한 새해 모두에 조차 절망의 그늘을 걷어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민주당이 희망으로 빚을 갚아야 한다. 이번 패배를 통해서도 민주당이 환골탈태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민주당에게 희망은 없다. 두 번 다시 민주당의 이름으로 표를 구걸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서로 화살을 겨누는 자중지란을 초래하기 전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무리 속에 숨지 말고 스스로 한 발 앞으로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다음 주자가 새로운 경기장에서 패배가 가르쳐 준 새로운 룰로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것, 그것이 필자를 포함한 책임자들의 소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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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매일신문]선거일은 ‘법정공휴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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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선거. 선거의 4대 원칙 중 하나다. ‘보통’이라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보통’이라는 말이 전면에 등장하기까지 ‘보통스럽지’ 못했던 전사가 행간에서 읽힌다.

그렇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1인 1표를 행사한다는 보통선거가 실시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귀족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정치참여가 자본가와 중산층에게, 다시 노동자와 소시민에게 그리고 여성에 이르는 ‘보통사람’ 모두에게까지 확대된 것은 불과 100년 안쪽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정치적 지위 역시 그 만큼 향상되었을까? 여성의 정치참여율은 아직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이 어떤 것인지는 3년째 거리에서 23번째의 희생자를 떠나보낸 쌍용차 사태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정치참여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고 하지만 이들이 정치영역에 등장하게 되는 것은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말기 환자가 된 다음이다. 따라서 보통사람들의 실질적인 참정권 확대를 위한 역사적 시도들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투표시간 연장에 관한 논란이 무성하다. 모 대선주자는 “공휴일인데 비용을 들여서 시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는지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한다.

선거일이 정말 법적으로 공휴일일까?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노동자가 출근을 했을까?

선거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근거는 단 하나뿐이다.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관공서와 공무원은 선거일에 쉴 수 있다. 즉, 관공서의 휴일이고 공무원의 휴일이다.

이 외에 선거일이 공휴일이라는 근거는 법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마치 선거일이 온 국민의 공휴일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법정 공휴일이라고 불리는 빨간 날은 근로기준법상 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공휴일은 언제일까? 법적으로 주1회의 휴일과 5월 1일 근로자의 날만 공휴일로 지정돼 있다. 따라서 선거일의 휴무여부는 회사에서 정하기 나름이고 결과적으로 지난 총선 당시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블루칼라 노동자는 62%가 선거일에 근무했다. 선관위가 의뢰한 연구용역 결과에서도 유급 휴무 또는 휴업으로 인정받는 노동자는 22.7%에 불과했다. 이러한 까닭에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중 열에 일곱은 투표시간의 연장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참정권 확대라는 당위에서 보더라도 갑론을박이 있을 수 없는 일이건만, 국민적 혼란을 야기한다느니 선거관리 비용이 증가한다느니 하는 논거들은 너무나 옹색해서 민망할 지경이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비용부담이 참정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결정한 바 있다. 헌재는 지난 2007년 해외거주자에 대한 투표권을 인정하면서 “국가적 부담증가를 우려하여 선거권 행사를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는 더 이상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200-300억이 들어가는데다 해외 각지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안전성을 확보하는 일이 국내 투표에서 2시간 연장하는 일보다 간단할 리 없었다. 해외거주자 투표는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였다. 그래서였을까? 한나라당은 재외 국민의 투표권을 위해 참 열심이었다.

 

그러나 국내 투표시간은 40년째 그대로다. 당시 그토록 적극적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말로만 보통선거라는 것이 밝혀진 마당이다. 부유한 동네의 투표율은 높고 비정규직 등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는 투표율은 낮다.

이미 선관위는 선거가 있는 해마다 많게는 170억원이라는 엄청난 홍보비를 쓰고 있다. 투표하기 싫어서라면 홍보비를 쓰는 것이 맞지만 시간이 없어서 투표를 못하는 것이라면 그 비용을 투표시간 연장에 쓰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이제 가난한 사람들의 의사가 배제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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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정치와 정책, 그 가려진 상관관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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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의 국회의 첫 국정감사이자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막을 내렸다. 문방위는 연이은 증인 출석 무산으로 일주일 넘는 파행을 계속했고, 환노위 역시 MBC 김재철 사장의 증인 출석 때문에 국감이 끝난 후 추가일정을 다시 잡아 놓은 상황이다. 법사위 역시 여야 간 증인 채택 문제가 끝끝내 협의되지 못했으며, 자료제출 문제로 법무부 국감의 파행을 빚기도 했다. 대립이 첨예했던 만큼 서로가 얻을 수 있는 교집합은 작았다.

국감이 끝나갈 때 즈음 되자 언론에서는 정쟁으로 점철된 국감이니 민생정책이 실종된 국감이니 하는 혹평을 쏟아냈다. 시민단체들 역시 너나 할 것 없이 이번 국정감사에 낙제점수를 매겼다. 그 동안 나름 매서운 눈초리로 국감을 모니터링 해 왔던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이번에는 ‘역대 최악의 국감’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우수의원을 아예 선정하지 않는 것으로 모든 평가를 대신했다.

 

5년 전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의 슬로건은 ‘경제를 살립시다’였다. 박근혜 후보와의 경선과정에서 불거진 그에 관한 의혹만도 이미 그의 도덕성을 땅 끝까지 떨어뜨리기에 충분했지만 국민들을 아낌없이 그에게 표를 던졌다. 97년 IMF 외환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쳐올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당선이 되자마자 거침없이 친기업 정책에 힘을 실었다. 대운하사업(나중에 4대강사업으로 탈바꿈한) 역시 747공약을 실현시켜 줄 기폭제라고 홍보했다.

이 때문에 지난 18대 국회 국정감사의 대부분은 4대강사업과 관련된 각종 위법행위와 정부의 친기업정책 노선에서 비롯된 재벌들의 노동조합 파괴행위, 영세업체들에 대한 공격적 약탈행위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의 묵인 또는 은폐 등등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법사위에서 줄곧 제기했던 대형마트 판결이나 기업의 노조탄압에 대한 사법부의 동조 문제는 바로 이러한 흐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권력 실세와 그 측근을 비호하는 검찰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던 이유 역시 이 정권이 사정조직의 생리를 악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마땅한 반작용이었던 것이다. 정책은 정치의 현현인 만큼 잘못된 정치의 상처는 정책에서 드러났다.

 

이제 대선이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각 분야의 구체적인 공약들을 내 놓고 있다. 그 중에서 후보들이 여야 없이 힘주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확대, 그리고 검찰개혁이다. 그 안의 실천방안은 제각기 다를지언정 이 세 가지 정책의 선언만으로도 이미 지금의 이명박 정부와 분명한 대척점에 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보 스스로의 정치적 입장을 정책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4대강사업에서 익히 목격했듯이 홍수예방사업이 홍수를 예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줄․푸․세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여당 후보의 경제민주화와 한국형 복지정책이 또 어떤 형태로 둔갑할는지는 미지수다. 군사재판으로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목숨들을 거두어 간 유신시대가 상속해 줄 검찰개혁이란 것도 상상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5년 전 이명박 후보가 살리겠다는 경제가 서민의 경제일 것인지 재벌의 경제일 것인지 따져보지 못했던 뒤늦은 후회감이 겹쳐오는 지점이다. 정책을 보기에 앞서 정치인을 먼저 검증해야 하는 이유이다.

 

국정감사는 말 그대로 정부 정책의 지난 성과에 대한 평가와 감시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그 정책의 최종적 책임을 져야할 정치인으로서의 대통령은 애석하게도 임기만료를 당장 코앞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책적 오류가 반복될 것인지 개선될 것인지는 오로지 지금의 대선주자들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대선 정국 속 마지막 국감이 대선후보들에 대한 검증을 피해갈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것이 순도 높은 정쟁으로 비화하기까지에는 정책적 쟁점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던 주요 언론들의 공을 빼놓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선 시민단체들이나 여타 언론들의 냉정한 평가에 대해서는 깊이 수긍한다. 정책을 실종시켰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더 많은 논거와 자료로 대선후보의 정체성을 보다 더 정밀하게 가늠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국감은 끝났으나 아직 선거는 끝나지 않았다. 아울러 정책에서 혹여 미진한 점에 있어서도 남은 예산과 법안 심사에서 철저하게 걸러 낼 것이다.

누가 선거를 정치판이라고 폄하해 말하는가. 정치와 정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고 정치를 외면하는 순간 정책은 실종된다. 지금은 그 자명한 진리를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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