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민일보]정치와 정책, 그 가려진 상관관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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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의 국회의 첫 국정감사이자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막을 내렸다. 문방위는 연이은 증인 출석 무산으로 일주일 넘는 파행을 계속했고, 환노위 역시 MBC 김재철 사장의 증인 출석 때문에 국감이 끝난 후 추가일정을 다시 잡아 놓은 상황이다. 법사위 역시 여야 간 증인 채택 문제가 끝끝내 협의되지 못했으며, 자료제출 문제로 법무부 국감의 파행을 빚기도 했다. 대립이 첨예했던 만큼 서로가 얻을 수 있는 교집합은 작았다.

국감이 끝나갈 때 즈음 되자 언론에서는 정쟁으로 점철된 국감이니 민생정책이 실종된 국감이니 하는 혹평을 쏟아냈다. 시민단체들 역시 너나 할 것 없이 이번 국정감사에 낙제점수를 매겼다. 그 동안 나름 매서운 눈초리로 국감을 모니터링 해 왔던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이번에는 ‘역대 최악의 국감’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우수의원을 아예 선정하지 않는 것으로 모든 평가를 대신했다.

 

5년 전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의 슬로건은 ‘경제를 살립시다’였다. 박근혜 후보와의 경선과정에서 불거진 그에 관한 의혹만도 이미 그의 도덕성을 땅 끝까지 떨어뜨리기에 충분했지만 국민들을 아낌없이 그에게 표를 던졌다. 97년 IMF 외환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쳐올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당선이 되자마자 거침없이 친기업 정책에 힘을 실었다. 대운하사업(나중에 4대강사업으로 탈바꿈한) 역시 747공약을 실현시켜 줄 기폭제라고 홍보했다.

이 때문에 지난 18대 국회 국정감사의 대부분은 4대강사업과 관련된 각종 위법행위와 정부의 친기업정책 노선에서 비롯된 재벌들의 노동조합 파괴행위, 영세업체들에 대한 공격적 약탈행위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의 묵인 또는 은폐 등등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법사위에서 줄곧 제기했던 대형마트 판결이나 기업의 노조탄압에 대한 사법부의 동조 문제는 바로 이러한 흐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권력 실세와 그 측근을 비호하는 검찰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던 이유 역시 이 정권이 사정조직의 생리를 악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마땅한 반작용이었던 것이다. 정책은 정치의 현현인 만큼 잘못된 정치의 상처는 정책에서 드러났다.

 

이제 대선이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각 분야의 구체적인 공약들을 내 놓고 있다. 그 중에서 후보들이 여야 없이 힘주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확대, 그리고 검찰개혁이다. 그 안의 실천방안은 제각기 다를지언정 이 세 가지 정책의 선언만으로도 이미 지금의 이명박 정부와 분명한 대척점에 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보 스스로의 정치적 입장을 정책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4대강사업에서 익히 목격했듯이 홍수예방사업이 홍수를 예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줄․푸․세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여당 후보의 경제민주화와 한국형 복지정책이 또 어떤 형태로 둔갑할는지는 미지수다. 군사재판으로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목숨들을 거두어 간 유신시대가 상속해 줄 검찰개혁이란 것도 상상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5년 전 이명박 후보가 살리겠다는 경제가 서민의 경제일 것인지 재벌의 경제일 것인지 따져보지 못했던 뒤늦은 후회감이 겹쳐오는 지점이다. 정책을 보기에 앞서 정치인을 먼저 검증해야 하는 이유이다.

 

국정감사는 말 그대로 정부 정책의 지난 성과에 대한 평가와 감시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그 정책의 최종적 책임을 져야할 정치인으로서의 대통령은 애석하게도 임기만료를 당장 코앞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책적 오류가 반복될 것인지 개선될 것인지는 오로지 지금의 대선주자들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대선 정국 속 마지막 국감이 대선후보들에 대한 검증을 피해갈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것이 순도 높은 정쟁으로 비화하기까지에는 정책적 쟁점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던 주요 언론들의 공을 빼놓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선 시민단체들이나 여타 언론들의 냉정한 평가에 대해서는 깊이 수긍한다. 정책을 실종시켰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더 많은 논거와 자료로 대선후보의 정체성을 보다 더 정밀하게 가늠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국감은 끝났으나 아직 선거는 끝나지 않았다. 아울러 정책에서 혹여 미진한 점에 있어서도 남은 예산과 법안 심사에서 철저하게 걸러 낼 것이다.

누가 선거를 정치판이라고 폄하해 말하는가. 정치와 정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고 정치를 외면하는 순간 정책은 실종된다. 지금은 그 자명한 진리를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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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포토라인, 위험하고 위력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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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31일 오후 3시.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 눈이 부셨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이렇게 위압적으로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국정감사 때마다 수 없이 드나들었던 대검찰청 정문도 생경하게 느껴졌다. 급작스러운 출두였음에도 오늘 내일을 다투는 초미의 관심사여서 그랬는지 사진기자들은 이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나 이외에 변호인단 자격으로 몇 분이 더 함께 했다. 일행들을 뒤로 하고 박지원 대표가 중앙에 서자 카메라와 기자들은 더 아우성이었다. 이렇게 담긴 영상들은 그대로 그 날 사람들의 저녁 밥상 위에 보기 좋게 올려 질 것이었다. 실제 돈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검 앞 포토라인에 선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는 여론재판은 시작된다.

 

심리학 용어로 ‘부정성 효과’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정보를 더 쉽게 받아들이고 한번 입력된 부정적 정보는 좀처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법원은 무죄공시제도를 두고 있는데 무죄나 면소 판결을 받은 피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재판부가 인정하는 경우 일간신문 등에 그 무죄판결을 공시하는 제도다. 물론 비용은 국가부담이다. 그런데 이를 원치 않는 피고인들이 적지 않다. 본인의 무죄를 공개적으로 밝혀주겠다는 데도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설령 무죄로 결론이 났다 하더라도 어떤 혐의로 재판을 받았는지를 새삼 이를 상기시킴으로써 불필요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거나 부정적 인상을 각인시킬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의심’이 ‘진실’보다 더 위력적이라는 사실을 익히 경험해 본 탓이리라. 명예회복을 위해 일간지에 보일 듯 말 듯 싣는 공시조차 이럴진대 검찰청 앞에서 찍히는 그 ‘한 컷’이 공중파를 타고 갖게 될 파괴력이라는 것은 과연 어느 정도이겠는가. 진실은 오랜 시간에 걸친 수고로움 뒤에 얻어지지만 의심은 즉각적으로 손쉽게 일어난다는 점에서, 여론재판이 시작되는 이 지점은 매우 위험하다.

 

그런데 이 ‘포토라인’의 매커니즘을 가장 잘 알고 활용하는 조직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검찰이다. 우리나라 형법 제126조에서는 공판청구 전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반한 검찰이 기소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피의사실 공표야말로 검찰이 정치에 개입하고 국면전환을 주도하기 위해 가장 유용하게 휘두르고 있는 전가의 보도가 됐다. 두 번의 무죄판결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끈질긴 항소로 2년을 넘게 끌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서도 검찰은 이를 십분 활용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또 어떤가.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까지 대검은 수사과정을 생방송하듯 언론에 브리핑했다. 이를 여과 없이 때로는 단정적으로 대서특필한 언론 역시 검찰과 공범의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 건설업체로부터 ◌억원 수수 의혹’, ‘검찰, 혐의입증 자신’이라는 보도가 매일 반복됨에 따라 여론은 ‘설마?’에서 ‘혹시?’로, ‘그런가?’에서 ‘그렇구나!’로 쉽게 나아간다. 그리고는 다음 날이면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라며 급기야는 보도되지 않은 내용까지 덧붙이며 확대재생산에 나서기도 한다.

 

5년째 법사위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검찰개혁은 피할 수 없는 화두였다. 검찰의 개혁을 요구하는 강도와 검찰이 이들을 대상으로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는 강도 사이에는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존재한다. 힘의 방향만 다를 뿐 크기는 같다는 얘기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 끈을 고쳐 매지 말라 하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자리와 사람을 가리는 일이 어려운 경우가 부지기수다. 진실이 무엇이든 엮기 좋은 재료들은 많으니 그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이 몇이나 되겠는가. 무소불휘의 권력기관을 상대로 싸우는 일은 백척간두에 서서 중심을 잡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선배 정치인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검찰에 맞서는 배포로 맷집을 키워왔다. 박지원 원내대표의 대검찰청 출석도 후배 정치인들에게 살아있는 교훈이 됐다. 박지원 대표가 먼저 자진해서 포토라인에 섬으로써 검찰 측을 당황하게 만든 것이다. 덕분에 카메라는 박지원 대표를 향했지만 의심은 오히려 검찰 쪽을 향하게 됐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했던가. 포토라인 정치가 언제까지 검찰의 전유물로 남게 될 지는 의문이다. 여론재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 할지라도 어딘가에 믿어주는 사람들만 있다면 맞서 싸우는 일이 두렵지만은 않을 터 소란스러운 플래시 세례 속에서도 검찰을 포토라인이 아니라 국민 앞에 세우기 위한 일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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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일보]사법부, 추적자의 반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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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 빵! 빵!”

근엄하고 정숙했던 법정에 연이어 총성이 울려 퍼졌다. 여고생을 살해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던 그 순간 피해자의 아버지는 법과 원칙이 실종된 법정에서 오로지 진실을 묻기 위해 스스로 검사가 되어 피고인에게 총구를 겨눠야 했다. 이것은 얼마 전 자체 내 최고의 시청률로 막을 내린 드라마 ‘추적자’의 첫 장면이다. 돈과 권력이 시키는 대로 조작된 증거와 강요된 증언으로 점철된 재판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됐던 히틀러의 기요틴과 다르지 않았다. 그 위에선 힘 있는 자의 명령과 힘없는 자의 복종만 있을 뿐 진위에 대한 입증이나 판단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드라마는 픽션이지만 이름 없는 사람들의 수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권력과 자본의 탐욕적 폭력을 정확하게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논픽션이다.

 

대법관 인사청문회가 얼마 전에 끝이 났다. 3주 전부터 청문회 특위의 민주당 위원들은 연일 아침저녁으로 릴레이 회의를 이어가며 후보자에 대한 정밀하고 철저한 검증에 힘을 쏟았다. 신상에 관한 도덕적, 법적 결함에서부터 법관 출신의 후보자는 판결문 하나하나, 검찰 출신의 후보자는 기소나 수사상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검증범위를 제약했던 것은 오로지 물리적인 시간상의 한계뿐이었다.

청문회 첫 날, 후보자는 태안기름유출사고 당시 삼성중공업의 법적 손해배상책임을 56억 원으로 제한해 준 판사였다. 접수된 피해액만 3조 5천억 원이 넘는 국내 사상 최대의 해양오염사고에 대해서 재판부는 타워팰리스 한 채 값도 안 되는 금액으로 면죄부를 준 것이었다.

둘째 날 후보자는 검찰 측의 추천인사로서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함께 고속승진의 가도를 달린 TK출신 중 한 사람이었다. 이 후보자는 위장전입에 부동산투기도 모자라 연고가 있는 지역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었다. 검찰은 부인하고 있지만 지금도 진행 중인 공판에서 그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수시로 오르내리고 있다.

셋째 날 청문회에서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한 달 치 최저임금보다도 더 많은 금액을 하루의 이행강제금으로 물린 후보자를 보며 벼랑 끝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법의 현실이 개탄스럽다는 그의 증언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마지막 날의 후보자는 경영승계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총수에게 배임죄를 인정하고도 형량을 늘리지 않고 집행유예를 선고한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잘못을 인정한 사람은 없었다. 때로는 몰랐거나 때로는 의도하지 않았거나 때로는 법에 쓰여 있는 대로 한 것일 뿐 법과 양심에 어긋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즈음되면 청문회는 스토리의 전개가 빤히 보이는 한 편의 픽션이 된다.

 

이것이 지금의 대법원과 이를 구성하는 혹은 구성할 대법관들의 현실이다. 4일 연속 청문회를 치러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의 피로가 아니라 사법부에 대한 절망감과 무기력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임명동의안 처리가 지연되자 보수 언론들은 열흘이 넘는 대법관 공석사태에 대해 야당을 향한 책임추궁을 지나 이젠 역사적 단죄라도 할 기세이다.

유서대필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 강기훈 씨의 재심사건이 3년이 다 되도록 방치되어 있는 것이 대법관이 부족한 탓인가. 이들이 대법관이 되어 하나의 소부를 구성한다면 어떻게 될까. 위장전입,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 편법 증여 정도는 눈감아줘야 하는 것은 물론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가는 하루에 100만원씩 철퇴를 맞을 것이고, 재벌들은 아무리 불법을 저질러도 피해액을 보상하겠다는 말만으로 죄를 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사법부의 모습인가.

 

드라마가 천착했던 현실은 다음 대사에 압축되어 있다. ‘총리직을 위해 재판을 조작한 대법관, 빚을 갚기 위해 친구의 딸을 살해한 의사, 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오기 싫어 소녀를 친 가수, 이들 모두가 사람’이라고, ‘사람이란 게 다 그런 것’이라고.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워진다’고. 그렇다. 이것이 이 뒤틀린 현실의 근원이자 작동기제가 된다. 재선이 되고 보니 더 많은 정보와 더 많은 힘이 집중되고 이에 뒤따르는 유혹과 회유가 수도 없이 양심의 벽을 타고 넘나든다. 휘몰아치는 풍랑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흔들릴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사람이 아닌가. 지금이 사법부가, 검찰이, 정치가 이 ‘현실’에 대한 반전의 시나리오를 보여줄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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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매일신문]대법관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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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을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5공 청문회와 함께 유행했던 말들이다. 2009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치러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 나온 후보자도 이 매뉴얼을 차례로 돌려가며 기계적인 답변을 하고 있었다. 청문회장에서는 여야의 청문위원들이 교차로 질의를 하게 되어 있어 공수가 바뀔 때마다 후보자를 둘러싼 숱한 의혹들이 파도처럼 일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적절한 지점에서 타협의 수위가 정해지지만 그 당시 청문회만큼은 달랐다. 검찰총장 내정자가 인사청문회 끝에 자진 사퇴를 하는 사상 초유의 사퇴가 벌어졌다. 외형은 자진 사퇴였으나 내용은 막다른 골목에서 사퇴가 불가피했던 만큼 사실상 ‘낙마’였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다시 내정된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매형 사건에 외압을 행사했던 사실이 불거져 나왔다. 후보자와 관련된 ‘부고란’까지 샅샅이 뒤진 끝에 얻은 개가였다.

 

우리나라 인사청문회는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던 2000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처음에는 대법원장이나 국무총리 등 헌법상 임명에 있어서 국회의 동의를 요하거나 국회에서 선출하는 고위공직자들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2003년, 2005년에 법이 순차적으로 개정되면서 국가정보원장이나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에서 모든 국무위원으로까지 그 대상이 확대되었다. 우리나라 사상 최초의 인사청문회는 김대중 정부 때 이한동 국무총리를 임명하면서였다. 이 후 장상, 장대환 총리 후보자들이 위장전입 등의 문제 때문에 연이어 낙마하면서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 검증은 인사청문회의 첫 관문이자 마지막 관문이 되었다. 그러자 후보자의 비위사실에 치중해 흠집내기에만 열을 올린다고 하여 일각에선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정책검증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는커녕 고위공직자의 ‘4대 필수과목(위장전입,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병역기피)’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만큼 그 도덕성의 잣대조차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청와대는 300개에 가까운 문항으로 후보자를 완벽하게 검증한다고 자랑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그 300개의 문항은 단 한 가지의 의혹을 거르기에도 성글기 짝이 없었다.

 

다시 대법관 인사청문회이다. 얼마 전 후보자군이 발표되자마자 각계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려와 재고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다양성이 문제다. 그러나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결국 그 중에서 4명의 후보자가 제청되었다. 1년이 다 되어가는 헌법재판관의 궐위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기사도 내지 않던 보수언론들이 대법관 4명의 궐위에 대해서는 하늘이 무너질까 연일 대서특필이다. 그러나 이것이 양으로 중요도를 따질 문제인가. 중요성으로 따지면 1년에 가까운 헌법재판관의 궐위가 기껏해야 한 달도 채 안 될 대법관의 궐위보다 가볍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법관의 ‘빈’자리가 아니라 소수자들을 위해 ‘비워두어야’ 하는 자리이다. 특히 이번에 임명되는 대법관들은 그 동안 소수자 보호를 위해 전향적인 의견으로 입을 모았던 ‘독수리 5형제’가 떠난 자리를 채워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누군가에 의해 대표되지 못한 소수자들의 권익은 항상 밀리거나 소외되기 쉽다. 14명의 대법관이 모두 획일적인 사고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 자체가 편파적인 것이다. 그래서 非서울대 출신이 필요하고 非법조인이 필요하고 남성이 아닌 여성 대법관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대법관의 다양화’는 사회의 마지막 소수자까지 보호해줘야 할 대법원이 갖는 사회적 책무의 또 다른 이름이다.

 

4명의 후보자를 한꺼번에 검증해야 하는 이번 인사청문회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무부장관을 비롯해 검찰총장 후보자 3명을 포함하여 14번의 청문회를 치렀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수월해지기는커녕 더 신중해지고 조심스러워진다. 수천 명의 법관들 속에서 뽑히고 뽑혀서 올라 온 후보자들이니 능력이 부족해서 낙마를 하겠는가. 방점은 다시 아직 검증되지 못한 도덕성의 문제와 대법관으로서의 책무 문제로 수렴될 것이다. 대법관의 궐석이 두려워 호들갑을 떨다가는 보수화된 사법부가 다시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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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일보] 다시 먹고 사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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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뿌리 깊은 나무’라는 사극이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세종의 치적을 새삼 강조하는 것이 식상할 법도 한데 극은 세종의 한글창제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흥미진진하게 전개하며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세종의 한글 창제는 문(文)의 독점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던 국가권력의 독점체제를 해체하는 것이었으며, 피통치자로서 권력의 장 밖에 소외되어 있던 백성들을 장 안으로 끌어들여 국가의 근간 즉, ‘뿌리’로 삼고자 한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가 이 사극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 권력의 상징은 무엇인가. 단연 ‘자본’ 즉, 돈이다. 국회의원도 4년이 지나면 국민으로부터 재신임을 받아야 하고 일국의 대통령도 임기를 마치면 권좌에서 내려와야 하지만 기업의 총수는 자자손손 편법적 경영승계를 일삼으며 영원한 군주로 군림한다.

자본권력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다국적기업과 국제적인 금융자본은 국가라는 바운더리를 넘나들며 세계 경제질서를 주도하고 있다. 독점화된 자본권력과 이에 결탁한 정치세력의 질서 하에서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서민들은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세계화의 탈을 쓰고 밀려들어온 신자유주의의 거센 쓰나미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경계를 더욱 선명하고 아득하게 구분지었고, 소외된 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절대적 빈곤상태에 이르러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국민들의 선택은 민주정부 10년이 이루어 놓은 크고 작은 정치사회적 진보를 뒤로 할 만큼 이러한 절박한 위기감의 표출이었다. 당시 이명박 후보자의 슬로건은 “경제를 살립시다”였다. 도곡동 땅에서 BBK의혹으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닥치고 정치’가 아닌 ‘닥치고 생계’의 문제가 언제나 가장 기본적인 국시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실패했다. 입만 열면 낙수효과를 외쳐대며 대기업을 살려야 나라도 살고 국민도 산다고 친기업정책에 열을 올렸지만 대기업들이 가져간 수익은 중소기업으로 서민층으로 흘러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사상 초유의 실업률과 물가대란으로 절대빈곤층은 확대되었고 소득불평등은 훨씬 더 악화되었다.

월가의 99%시위가 세계 각지로 확산되고 있다. 1%만을 위한 세계 금융자본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이 움직임은 한 달 만에 태평양을 건너 서울에도 상륙했다. 주최자도 선동자도 없이 삼삼오오 모인 이들은 입을 모아 부자과세, 비정규직 철폐, 한미FTA반대 그리고 금융자본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외쳤다. 소외된 사람들이 더 이상 소외된 채로 남아있지 않겠다는 마지막 항거가 드디어 분출된 것이다.

차기 대선이 1년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불행하게도 4년 전보다 상황은 더 심각하다. 부자감세로 국가부채는 더 늘어났고, 친재벌정책으로 경제구조는 더 취약해졌다. 실업률은 치솟아 상대적 빈곤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것이 우리가 다시 먹고 사는 문제로 되돌아와야 하는 이유다.

서민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면 정부는 세계금융위기 때문이라고, 이명박 정부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불가항력이라고 항변한다. 그렇다. 우리는 세계적 위기를 겪고 있고, 어쩌면 그 거대한 미국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얼마 전 대통령이 또 미국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왔다. 그리고 세계 그 어느 나라도 위기를 맞은 미국과 FTA를 맺겠다고 나서지 않는데 안 하면 우리가 손해라고 빨리 국회에서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어찌나 다급하면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 스파이까지 보내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았다.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이 탈출구로 우리를 선택했다는 것은 비극이다. 그러나 미국만 가면 뭐 더 줄 것 없나 주머니를 뒤적이는 정부를 가진 것은 더 큰 비극이다.

“미국 정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근거로 청구권이나 항변권을 갖지 못한다. 미국 정부의 조처에 대해 한-미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이것이 국가대 국가의 평등한 협정이라고 한다. 우리국민은 나라 없는 백성인가.

마치 FTA가 세계 경제 위기에서 탈출할 노아의 방주처럼 홍보하지만 난파선일 수도 있다. FTA는 선진국이 후진국을,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자본가가 노동자를, 종국적으로는 거대화된 금융자본이 개별국가의 통치질서를 소외시키는 방식이자 굴레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국가는 FTA에 대해 다시 신중하게 선택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정부는 분배의 장에서 철저히 소외된 서민들에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권리를 되돌려주어야 한다. 최소한 우리 국민들이 외국자본의 먹잇감이 되는 일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는 어느 정당 어느 세력이 집권을 한다고 해도 차기 정부의 지상과제이다. 그래야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라로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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