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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센터/칼럼/기고

[전북도민일보]다시 거리에 서서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들이 겸 데이트 겸 집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은 무차별적인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아이 손을 잡고 나왔던 아빠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나왔던 친구들과 연인들이 방패와 곤봉에 찍히거나 강제로 연행돼 감금을 당했다. 필자 역시 땀으로 얼굴이 범벅이 된 채 그 비극의 현장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아직도 경찰의 날카로운 방패에 찍혀 다친 한 시민을 옮기던 그 날 밤을 잊지 못한다.

공안정국이 되살아 온 듯한 악몽이었다. 정권의 헌법유린행위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 들불처럼 번지던 6월 항쟁으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시점이었다. 공권력과 폭력의 경계는 무너졌으며 사건 처리 과정에서도 사정당국은 배후를 찾기 위한 마녀사냥에만 혈안이 됐다. 결국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였다던 2008년 촛불집회는 검찰 집계에 따르더라도 1500명 가까이가 입건되고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소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것이 필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외투쟁에 대한 첫 기억이자 야당의원으로서 맞닥뜨린 엄혹한 정치 현실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대의정치체제 하에서 거리로 나와야 하는 정치의 민낯은 참혹하고 서러웠다.

 

이번 국정원 사건은 국가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국가기관이 특정 정치세력을 비호하기 위해 선거에 개입해 여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은폐한 사건이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기관이 국민들을 상대로 악의적인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색깔론을 부추겨 국론 분열을 책동한 것이다. 이것이 정치민주화의 성과를 자축하며 경제민주화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지금 이 시점, 이 대명천지에 국민들의 눈을 속이고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더 기가 막힌 것은 당사자들의 태도다. 사건의 전말이 다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관련자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는커녕 또 다른 잘못을 저질러 지난 잘못을 덮으려 하고 있다. 국가기밀을 엄수해야 할 국정원이 나서서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더니 이제는 대화록 기록물이 사라졌다고 소동이다. 이 네버엔딩 스토리의 끝은 어디인가? 원래 잘못한 게 크면 변명이 길어지는 법. 그러나 우리는 이 미로같은 함정에서 절대 목적지를 잊어선 안 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국정원이 주도하고 경찰 지도부가 동원돼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 민의를 왜곡시킨 최악의 헌법유린사건이다. 지금의 여당과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그 수혜를 입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사안의 엄중함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국민들이다. 6월 항쟁 이후 최초라는 종교단체 성직자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으며, 학내 교수들과 학생들도 모자라 해외동포에 유학생들까지 줄줄이 국정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국내 언론은 시종일관 함구를 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닥친 최대의 위기를 보도하는 외신들은 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는 처음부터 닫힌 문이었다. 회의를 공개하고 기관보고 시 기관장이 출석하는 당연한 절차를 두고도 일일이 승강이를 벌여야 했고, 한 달 남짓밖에 되지 않는 조사기간 동안 난데없는 휴가 타령에는 헛웃음조차 아깝다. 설령 국민여론에 등 떠밀려 억지로 하는 것이라고 해도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소모적인 정쟁을 자제하고 최대한 합의로 끌어가는 것이 백번 타당한 일이지만 허수아비를 불러놓고 국정조사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을 물가까진 끌고 갈 순 있을지언정 억지로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외투쟁을 할 때면 어김없이 따라 붙는 꼬리표가 있다. ‘민생을 외면하고 정쟁만 일삼는 국회’, ‘일 안하는 국회’라는 꼬리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광장에서 첫 의원총회가 열린 지 만 24시간도 안 돼 보수언론들은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며 ‘민생으로 돌아오라’는 사설을 내 놓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거리에 선다. 악몽은 되살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하지만 이대로 진실이 묻히고 국민을 농락한 자들이 웃는 모습을 지켜볼 수는 없다. 8월의 뜨거운 여름은 더 뜨거운 투쟁으로 이겨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