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일보] 다시 먹고 사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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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뿌리 깊은 나무’라는 사극이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세종의 치적을 새삼 강조하는 것이 식상할 법도 한데 극은 세종의 한글창제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흥미진진하게 전개하며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세종의 한글 창제는 문(文)의 독점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던 국가권력의 독점체제를 해체하는 것이었으며, 피통치자로서 권력의 장 밖에 소외되어 있던 백성들을 장 안으로 끌어들여 국가의 근간 즉, ‘뿌리’로 삼고자 한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가 이 사극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 권력의 상징은 무엇인가. 단연 ‘자본’ 즉, 돈이다. 국회의원도 4년이 지나면 국민으로부터 재신임을 받아야 하고 일국의 대통령도 임기를 마치면 권좌에서 내려와야 하지만 기업의 총수는 자자손손 편법적 경영승계를 일삼으며 영원한 군주로 군림한다.

자본권력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다국적기업과 국제적인 금융자본은 국가라는 바운더리를 넘나들며 세계 경제질서를 주도하고 있다. 독점화된 자본권력과 이에 결탁한 정치세력의 질서 하에서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서민들은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세계화의 탈을 쓰고 밀려들어온 신자유주의의 거센 쓰나미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경계를 더욱 선명하고 아득하게 구분지었고, 소외된 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절대적 빈곤상태에 이르러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국민들의 선택은 민주정부 10년이 이루어 놓은 크고 작은 정치사회적 진보를 뒤로 할 만큼 이러한 절박한 위기감의 표출이었다. 당시 이명박 후보자의 슬로건은 “경제를 살립시다”였다. 도곡동 땅에서 BBK의혹으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닥치고 정치’가 아닌 ‘닥치고 생계’의 문제가 언제나 가장 기본적인 국시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실패했다. 입만 열면 낙수효과를 외쳐대며 대기업을 살려야 나라도 살고 국민도 산다고 친기업정책에 열을 올렸지만 대기업들이 가져간 수익은 중소기업으로 서민층으로 흘러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사상 초유의 실업률과 물가대란으로 절대빈곤층은 확대되었고 소득불평등은 훨씬 더 악화되었다.

월가의 99%시위가 세계 각지로 확산되고 있다. 1%만을 위한 세계 금융자본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이 움직임은 한 달 만에 태평양을 건너 서울에도 상륙했다. 주최자도 선동자도 없이 삼삼오오 모인 이들은 입을 모아 부자과세, 비정규직 철폐, 한미FTA반대 그리고 금융자본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외쳤다. 소외된 사람들이 더 이상 소외된 채로 남아있지 않겠다는 마지막 항거가 드디어 분출된 것이다.

차기 대선이 1년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불행하게도 4년 전보다 상황은 더 심각하다. 부자감세로 국가부채는 더 늘어났고, 친재벌정책으로 경제구조는 더 취약해졌다. 실업률은 치솟아 상대적 빈곤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것이 우리가 다시 먹고 사는 문제로 되돌아와야 하는 이유다.

서민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면 정부는 세계금융위기 때문이라고, 이명박 정부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불가항력이라고 항변한다. 그렇다. 우리는 세계적 위기를 겪고 있고, 어쩌면 그 거대한 미국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얼마 전 대통령이 또 미국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왔다. 그리고 세계 그 어느 나라도 위기를 맞은 미국과 FTA를 맺겠다고 나서지 않는데 안 하면 우리가 손해라고 빨리 국회에서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어찌나 다급하면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 스파이까지 보내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았다.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이 탈출구로 우리를 선택했다는 것은 비극이다. 그러나 미국만 가면 뭐 더 줄 것 없나 주머니를 뒤적이는 정부를 가진 것은 더 큰 비극이다.

“미국 정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근거로 청구권이나 항변권을 갖지 못한다. 미국 정부의 조처에 대해 한-미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이것이 국가대 국가의 평등한 협정이라고 한다. 우리국민은 나라 없는 백성인가.

마치 FTA가 세계 경제 위기에서 탈출할 노아의 방주처럼 홍보하지만 난파선일 수도 있다. FTA는 선진국이 후진국을,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자본가가 노동자를, 종국적으로는 거대화된 금융자본이 개별국가의 통치질서를 소외시키는 방식이자 굴레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국가는 FTA에 대해 다시 신중하게 선택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정부는 분배의 장에서 철저히 소외된 서민들에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권리를 되돌려주어야 한다. 최소한 우리 국민들이 외국자본의 먹잇감이 되는 일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는 어느 정당 어느 세력이 집권을 한다고 해도 차기 정부의 지상과제이다. 그래야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라로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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