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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열 자식보다 악처가 낫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만 7년째다. 애초 수도권과 달리 지방출신 국회의원들은 상임위 선택이 자유롭지 못하다. 전북도의 다양한 현안에 골고루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1~2석이 더 줄면 특정 상임위 집중은 더욱 심화되고 탄력적인 현안 대응에는 그야말로 적신호가 켜질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것에 반대한다. 거의 반사적이다. 농촌지역구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자기 밥그릇 챙기기로 폄하되기 딱 좋다. 그간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 여파인 만큼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농어촌 대표성 확보 절대적

이명박 정권 당시 한나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경찰병력까지 국회 안으로 진입시킨 가운데 한미 FTA를 5분 만에 날치기 처리할 때 농촌을 지역구로 한 여당 의원들은 무엇을 했는가? 박근혜 정부 들어 수도권 규제완화를 위한 선행과제를 ‘투자활성화대책’이라고 포장만 바꿔 추진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또 어떠한가? 이런 태도를 취했던 여당의원들이 갑자기 농어촌의 대표성을 얘기하니 국민들이 입을 떡 벌리고 손사래를 칠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어촌의 대표성 확보는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과제다. 진안군의 면적은 789㎢인데 9월 현재 인구는 2만6000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아파트가 밀집한 수도권의 한 동은 1㎢도 안 되는 면적에 3만2000명이 살고 있다.

이렇게 불균형이 극심한 상태에서 “사람의 대표이지 나무나 땅의 대표가 아니다”라는 낡은 언어는 직접적으로 농어민의 목을 조르는 흉기가 된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 25조에서도 국회의원지역 선거구는 시도의 관할구역 안에서 인구, 행정구역, 지세, 교통 기타 조건을 고려해 획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농촌 포기정책도 모자라, 농어민은 최소한 국민으로서의 권익도 포기하라는 노골적인 선언을, 이제 더는 들어줄 수가 없다.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농촌은 그저 저임금으로 먹을 수 있는 값싼 쌀을 대는, 도시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 눈부신 경제성장이라는 허울 속에서 “너만은 도시로 가라”며 자식을 대도시로 등 떠미는 어미의 심정을 모든 국회의원들이, 전국의 국민들이 공평하게 알아주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악처가 열 효자보다 낫다는 말은 그래서 더욱 가슴을 친다.

농어촌의 국민에게 더 이상 양보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농어촌 특별선거구’는 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농어촌 현실에서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 될 것이다. 수백 년에 걸쳐 안정적으로 산업화를 이뤄왔던 타국의 원칙이 우리나라에 맞을 리 없다. 법률, 행정이 농촌의 권익을 당장 잡아줄 리도 없다. 응급처방은 정치권의 몫이다.

전북 의석 수 지키기 사활 걸어야

다만 이는 응급처방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농어촌에 다시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농어촌 특별선거구’는 그야말로 제 밥그릇 지키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야 의원들의 이러한 결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전제에서 필자를 비롯한 전북도 의원들은 의석 수 지키기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자칫 당론과 배치될 수 있는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농어촌에는 “다음 명절에 또 올게요”하는 자식보다 잔소리를 하더라도 항상 곁에서 등 긁어줄 수 있는 반려자가 꼭 필요하다. 비례대표로 농어촌의 지역대표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쓸쓸히 늙어가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서울 효자의 발상에 불과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