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레스센터/칼럼/기고

[전북일보] 회장님, 회장님, 회장님

국감 첫 날, 상임위 곳곳에서 정회와 파행이 이어졌다. 대부분은 증인 채택 문제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여야 간 논쟁이 치열한 대상은 재벌 총수들이다. 특히나 이번 국감은 롯데 사태가 불거지면서 시작 전부터 재벌 총수들에 대한 증인 선정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정치권이 기업인들을 불러내 갑질이나 하려 한다고 비난하며 일제히 회장님들을 비호하고 나섰다. 재벌에 대한 갑질이라니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소리다.

국감 때 재벌 총수 증인출석 당연

국정감사 때 재벌 총수들에 대해 증인출석을 요구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년 전 기사를 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18대 마지막 국감을 앞두고도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중소·영세상인들의 상권까지 모조리 빼앗아버린 4대 유통 재벌들의 경영진들이 호출을 받았었다.

올해도 대기업들을 빼 놓고 어떤 현안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장 경영권 분쟁으로 속살을 드러낸 롯데그룹엔 순환출자나 부당거래, 편법상속 등 재벌의 모든 고질적 문제들이 총체적으로 집약돼 있다. 온 국민의 생활패턴까지 바꿔놓았던 메르스 사태 역시 세계 기록을 경신한 대확산의 경로 한 가운데엔 삼성서울병원이 있었다. 또 진정한 갑질의 결정판을 보여준 땅콩회항 사건 역시 당사자인 조현아 부사장이 구치소에서까지 특혜를 누렸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또 한번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그 외에도 잠수함 비리와 연관된현대중공업 등등 재벌 대기업들이 등장하는 사건 리스트는 끝이 없다.

우리당은 이번 국감의 주요 테마 중 하나를 ‘재벌개혁’으로 정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에 대응하는 전략이기도 하지만, 재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경제는 물론 교육문화복지 심지어 안보까지 우리 사회의 진일보를 이루기 어렵겠다는 것을, 올 한 해 너무나 뼈저리게 실감했기 때문이다. 기업 내 오너리스크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재벌리스크는 이미 중환자 수준에 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점점 민주화가 되어 왔지만 자본은 점점 독점화되어 온 결과였다.

그렇다면 이 많은 회장님들께선 정말 줄줄이 국감장에 서는 것일까?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출석 요구를 받은 사람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응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국감이 시작되면 재벌 회장님들은 이미 국내에 없다. 동행명령을 내려도 국회 공무원 손에 끌려 들어오는 재벌 총수는 없다. 물론 출석을 거부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대부분 벌금이 선고된다. 국회가 아무리 ‘갑질’을 하려고 총수들을 불러댄 들 벌금 천만 원 앞에서 재벌 총수들이 자신을 ‘을’이라고 생각할까?

증인신청 반대 국회의원도 공개를

어느 한 의원은 삼성SDS 사장을 증인으로 부르자고 하니 국세청 고위 간부가 달려와서 빼달라고 하더라는 얘기를 털어놨다. 권력의 중심추가 어디로 가 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여당에선 아예 대놓고 증인신청 실명제를 해야 한다고 나섰다. 국회 스스로 국회를 믿지 못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무분별한 증인신청을 막을 필요가 있다면, 반대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공개해서 증인신청을 이유 없이 방해하는 일도 막아야 할 것이다. 재벌 총수들의 눈치를 보느라 그런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여당은 아직 이렇다 할 답이 없다. 아직 회장님들 심기가 영 불편하신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