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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지역의 예산 전문가가 절실하다



바야흐로 예산시즌이다. 지난주에 예산조정소위 위원들도 확정이 됐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발동이 걸릴 것이다. 한정된 예산을 두고 누가 가져가느냐의 이 싸움은 말 그대로 ‘예산 전쟁’이다.

그런데 사실 지금쯤이면 이미 절반의 승부는 갈렸다고 봐야 한다. 국회에서 움직일 수 있는 예산은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1% 내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99%의 예산이 정부안 단계에서 완성된다. 여기에 싣지 못했다면 싸움의 제일 중요한 첫 라운드에서 이미 한번 판정패를 당한 셈이다.

국비 확보 위한 신규사업 발굴 필요

특히 신규사업이라면 정부안에 반영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선 부처가 기재부에 중기사업계획서를 제출하기 전부터 협의에 들어가야 한다. 세수가 줄어들자 신규사업을 억제하기 위해 중장기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사업은 제외시키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바로 1월 이전이다. 결국 역순으로 일정을 짜보면 내년도 예산안을 준비하기 위해선 작년 4분기부터는 사전준비를 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담당하는 공무원 중에 이러한 예산 일정들을 훤히 꿰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이미 정부안이 다 완성돼 국회로 제출된 지금에야 의원실에 찾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신규사업을 넣어달라고 들이미는 경우도 있다. 이런 예산들은 들어가도 문제고 안 들어가도 문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신규사업의 발굴이다. 1년 전 필자가 예결위 간사를 하면서 지역예산에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이 신규사업의 확대였다. 전북지역에 예산을 따 주고 싶어도 아예 대상사업 자체가 없어서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규사업을 늘리는데 총력을 기울인 결과, 전북지역에만 200개의 신규사업이 신설될 수 있었다. 사실 예산총액으로 숫자놀음만하겠다고 하면 수천억짜리 새만금사업에 몇 십억 몇 백억 더 얹어버리면 그만이다. 1억 짜리 신규사업 100개 발굴하는 것보다 그게 더 쉬운 일이니까. 그러나 예산확보의 목적이 예산총액 기록을 갱신하자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신규사업을 발굴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어떠한 사업들을 장려하고 있는지,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하는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 중에서도 우리 지역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등을 반보라도 앞서 꿰뚫어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를 테면, 작년에 3D프린팅이 새로운 사업분야로 떠올랐지만 관련 사업을 선점한 지역은 많지 않았다. 필자는 그 때 이 산업의 가능성을 보고 이니셔티브를 전북으로 가져오기 위해 기재부와 끝까지 설전을 벌인 끝에 관련예산을 따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3D프린팅은 더 이상 신규사업이 아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3D스캐닝 사업이다. 3D프린팅은 도면데이터를 넣고 물체를 만들어내는 기술이어서 도면데이터의 부가가치가 높은데, 3D스캐닝은 물체를 스캔해서 디지털도면 자체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이 두 가지 아이템 상호보완, 상생할 수 있는 분야들이기 때문에 3D프린팅을 선점하고 있는 전북으로선 추진하기 매우 좋은 사업인 것이다. 이런 사업들을 많이 발굴해 내는 것이 바로 예산전문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자치단체 예산 공무원 전문성 높여야

이렇듯 예산전문가는 예산안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과 트렌드의 변화를 읽어내는 통찰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들의 자질은 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나 삶의 질과 직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자치단체에서 예산전문가를 양성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히려 매해 예산담당자가 교체되면서 전임자의 기본적인 노하우조차 제대로 승계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총액만 늘리는 예산확보가 시민들의 삶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경쟁력 있는 자치단체가 되기 위해선 예산담당자의 전문성부터 키울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