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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센터/신문기사

[세계일보]경제민주화법 어디까지…여권 재계에 무릎?

요즘 여의도 정가를 관통하는 최대 화두는 경제민주화다. 지난해 대선에서 보수적 성향의 박근혜 대통령이 진보진영의 이슈인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선점하면서 ‘예고된 이슈’였다. 경제민주화의 핵심 논리는 간단하다. 우리 사회가 산업화 이후 정치 영역에서 민주화는 어느 정도 달성했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극단적인 부의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만큼 이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 전도사’라 불리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영입, 이슈를 선점해 당선됐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를 현실화하는 작업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국회 입법화 과정에서 재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경제민주화 법안 어디까지 왔나

여야는 대선공약 관련 83개 법안을 올 상반기인 6월 임시국회 안에 우선 처리키로 합의했다. 이 중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은 10여 개에 달한다.

가장 논란이 큰 법안은 대기업의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일감 몰아주기)를 제재하는 법, 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공정거래법 개정안)이다. 일감 몰아주기는 국내 대기업의 총수 중심 승계구도와 직결돼 있어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국내 굴지 기업의 3, 4세 경영권 승계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

이 법의 주요 쟁점은 크게 네 가지다. 무엇을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로 볼 것이냐(기준), 부당 내부거래 입증을 누가 할 것이냐(책임), 제재·처벌은 누구를 어떻게 할 것이냐(처벌), 대기업 총수 일가의 지분이 30% 이상인 계열사가 부당내부거래로 적발될 때 총수가 관여한 것으로 추정해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는 ‘30% 룰’이다.

현재 정무위 법안심사소위가 논의 중인 내용은 당초 개정안을 주도하던 강경파의 안에서 많이 후퇴했다. 기존 ▲‘현저하게 유리한 조건’→‘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입증책임은 기업에서 공정위로 ▲30%룰은 폐지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달리 여야 이견이 크지 않은 금융정보분석원(FIU) 관련 법, 공정거래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법 등은 일단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해 전체회의로 넘어갔다. 이들 경제민주화 법안 대부분은 4월을 넘겨 6월 임시국회로 넘어가는 흐름이다.

앞서 하도급법 개정안(부당단가인하에 대한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연봉 5억원 이상 임원 연봉공개 의무화)은 정무위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하도급법을 제외한 이들 경제민주화법 대부분은 4월 임시국회 통과는 물 건너가고, 6월 임시국회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재계 반발에 여당 무릎 꿇나


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경제민주화가 무리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비쳐지면서 “대기업 옥죄기는 안 된다”는 여당 내 온건파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는 양상이다. 이런 여권의 지원사격에 기세가 오른 경제5단체장은 입법권 침해 논란에도 29일 국회를 직접 찾아 경제민주화 법안 재논의를 압박하고 나섰다.

경제5단체는 이날부터 이틀간 열리는 본회의에서 일부 경제민주화 법안과 ‘정년 60세 연장법’ 등이 처리될 것으로 예상되자 국회에 찾아와 우려를 전달했다.

이들은 대선 때부터 ‘반경제민주화’ 편에 섰던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를 만나 “기업 경영에 부담이 되는 과잉 입법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원내대표는 “기업이 옛날과 조금 달라진 (정치권의) 분위기 때문에 투자를 주저하는 성향을 보이는데 앞으로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투자계획을 확실하게 세워달라”고 호응했다.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도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제민주화 담론도 좋지만 그보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경제활성화가 먼저”라고 가세했다.

반면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의원들이나 친박(친박근혜)계 이혜훈 최고위원 등 경제민주화 조속 입법을 주장하는 쇄신파 움직임은 위축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경제민주화보다 경제활성화 여론이 득세할 가능성이 크다.

야당은 “경제민주화는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 지향해 가야 할 역사적 소명”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경제5단체장이 민주당 소속 박영선 법사위원장과 이춘석 법사위 간사 등을 만나려 했지만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바란다면 여당은 내부 성찰이 필요하고 민주당은 경제민주화 수준이 다르더라도 이번 정부에서 최대한 경제민주화가 이뤄지도록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용인대 최창렬 교수는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국회 상임위 단계에서 좌초되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