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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센터/신문기사

[한국일보]'경영상 배임죄 완화 추진' 논란 재점화

■ 여당 개정안 발의
"경영상 판단은 단죄 말아야"
야당ㆍ시민단체선 반대 목소리
법 개정까지 험로 예상



기업인들의 정상적 경영판단에 대해선 배임죄를 묻지 않도록 법 개정이 추진된다. 기업인 배임죄 적용 논란이 재점화할 조짐이다.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은 기업인의 경영행위에 적용되는 배임죄를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상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27일 밝혔다.

개정안은 상법 282조2항에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떠한 이해관계를 갖지 않고 경영상 결정을 내리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더라도 의무의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단서를 삽입한 것이 골자. 즉, 기업인이 사적 이익 아닌 경영상 판단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면, 설령 회사에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배임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기업인 배임죄 처벌강화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 기간 중 '경제민주화'의 핵심 항목이었다. 재벌범죄의 대부분인 배임과 관련된 것인 만큼, 재벌총수의 배임죄는 집행유예 없이 반드시 실형을 선고하고 형량도 대폭 확대하는 법안을 여야 공히 내놨다.

그러나 배임죄는 기준이 모호하고 대상이 폭넓어 기업인을 범죄자로 내모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 배임죄에 대한 판결도 종종 엇갈렸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8월 배임죄 혐의로 법정 구속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외환위기 이후 부실계열사를 지원함으로써 정상적인 계열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배임적용의 이유였다. 당시 1심 법원은 "회사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일반적ㆍ추상적 기대 아래 손해를 입힌 경우는 경영판단의 재량 범위라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 이후 재계에선 개인적 이익 아닌 회사 회생을 위한 경영상 판단까지 배임죄의 잣대를 들이대면 누구도 위험을 감수하면서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정상경영활동이나 의사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실제로 2004년 대법원이 대한보증보험 전 대표에 대해 "경영자가 기업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을 갖고 결정한 사안까지 형사책임을 묻을 수 없다"며 무죄판결을 내린 예도 있다.

이명수 의원측은 이번에 법 개정안을 제안한 이유를 "배임죄 적용이 배제되는 '경영 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이 독일 주식법 제93조에 명문화돼 있고 미국에서도 판례법으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현행 배임죄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학계에서도 계속 있어 왔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의 배임죄 구성요건이 독일, 일본 등에 비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면서 "기업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파괴해 국가경제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만큼 적법 절차에 따른 경영 판단 행위를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동욱 동국대 법대 교수도 "기업의 부당행위에는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지만 경영행위의 특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단체 등에선 오히려 배임죄 적용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 법 개정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이춘석(민주통합당) 국회 법사위 간사는 "우리나라의 기업 이사회는 객관적ㆍ독립적 기능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경영판단이라는 이유로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을 경우 어떤 배임에 대해서도 죄를 물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백운광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도 "독일의 경영판단 원칙은 노조, 은행, 회사경영진으로 구성된 공동 이사회를 전제로 생겨난 규정이어서 이사회가 오너일가의 거수기로 전락한 한국현실에는 맞지 않는 개정안"이라고 비판했다.